가천대 길병원 오영준 간호사, 페이스북에 '간호사 이야기' 웹툰 연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지만, 감염병과 맞서 싸우는 의료진의 헌신과 열정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강력한 무기로 남아 있다.

추석인 1일에도 우리의 숨은 영웅들은 외부와 차단된 격리 병실 안에서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코로나19 종식돼 더 밝은 의료 현장 전달할 수 있기를"

가천대길병원 내과 중환자실 소속 오영준(34) 간호사도 코로나19 저지를 위한 최일선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의료진 중 한 명이다.

그는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을 간호하면서, 동시에 다른 간호사들의 근무 현장을 페이스북에 웹툰으로 연재해 화제를 낳고 있다.

오 간호사는 미대에 진학해 한국화를 전공하다가 진로를 바꿔 가천대 간호학과에 편입한 뒤 2013년 길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평소 취미 삼아 태블릿PC에 그림을 그리던 그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페이스북에 '간호사 이야기'라는 웹툰 페이지를 만들고, 간호사들의 활동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그의 그림 속에서 간호사들은 감염의 두려움 속에서도 서슴없이 방호복을 챙겨 입고 격리 병실로 향하고, 병실에서 나와서는 샤워 후 머리 말릴 시간도 없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행정 일을 처리한다.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해 격리구역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장비 세척·건조·분류나 각종 청소 작업도 모두 간호사의 몫이다.

오 간호사는 그러나 동료 간호사들을 영웅적으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나이트 근무를 7번 해도 각종 지출 때문에 텅 비어버린 통장 잔액에 좌절하고, 근무 후 녹초가 된 몸을 국밥과 소주 한잔으로 달래는 일상은 여느 소시민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 간호사는 "의학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간호사는 그저 의료 현장에서 주변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훨씬 더 다양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며 "코로나19가 종식돼 조금은 더 밝은 의료 현장을 전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 잔잔하고 담담하게 간호사 모습 전달

오 간호사는 웹툰에서 간호사들의 모습을 잔잔하고 담담하게 전달했다.

오 간호가 연재한 웹툰과 글 중 일부를 원문에 가깝게 정리해 소개한다.

'연신 짜내는 수액 펌프에서 경고 알람 음이 흡사 창문 틈으로 몰아치는 기괴한 바람 소리처럼 쉼 없이 격실을 울린다.

오로지 혼자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담당 간호사.
한바탕 태풍이 지나가고 어느덧 고요함을 되찾은 음압격리실.
잠시 맞이하는 평화 속에서 녹초가 되어 잠시 태풍이 지나간 창밖을 바라보며.'

'중환자실 입구, 그 흔한 풍경.
우리에게 맡겨진 환자.
그 누군가에겐 부모님, 그 누군가에겐 배우자, 그 누군가에겐 아들·딸.
일생에 몇 번 경험하지 못할…밖에서 애태우고 있을 보호자들.
어디 가지도 못하고 문 앞 복도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난다.

'
'격리병동에 에어컨을 틀어도 방호복 안은 습식 사우나, 후드 안은 습기가 가득해 속옷이 다 젖을 정도.
너무 더워서 생수를 얼려서 껴안고 일한 적도 있다.

지금은 아이스 조끼가 지급됐지만.'
'인공심폐장치(에크모·ECMO) 유지 며칠 만에 용혈이 급속도로 발생하니 다급해진 의료진.
코로나19 양성에서 음성으로 바뀐 것은 희소식이지만 롤러코스터 타듯 기복이 심한 환자의 폐 상태를 보니 밀려오는 허무함… '
'감염 관리상 제한 격리구역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들어가야 한다.

격리 병실 간호사는 환자의 모든 케어뿐 아니라 장비 세척·건조와 환경 미화까지 다 커버한다.

'
`방호복을 입고 나올 때마다 땀범벅이 되다 보니 샤워를 해야 한다.

머리 말리는 일도 일이어서 일회용 타월이나 시트로 머리를 감싸 올려 버리고 바로 전산 업무를 본다.

샤워한 지 몇분 안 돼 또 급하게 방호복을 입고 뛰쳐 들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
'통풍 안 되는 습기 가득 먹은 보호구, 비닐 가운 안으로 흠뻑 젖은 속옷.
마스크 안은 뜨거운 열기와 이산화탄소 재흡입.
처음에 길면 반년 생각했는데, 이젠 그러려니 하는 일상.'
'산소포화도·심박동수·혈압 체크를 위해 모니터에 꽂힌 간호사의 시선.
각종 생명 장치 주렁주렁 달린 중증환자. 중환자 간호사에게 숙명인 백케어(환자 등 뒤에서 돌보는 것)를 방호복을 입고 하려니 동작은 둔하고 신경은 곤두서고. 땀인지 식은땀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