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의 유망 투자처로 일본 5대 종합상사를 선택했다. 저평가된 우량주에 장기투자한다는 투자철학을 고수하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해외에서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한 행보로 평가된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투자회사 벅셔해서웨이는 31일 “재보험 계열사인 내셔널인뎀니티컴퍼니를 통해 지난 12개월 동안 일본 5대 종합상사의 주식을 5% 이상씩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일본 재무성에 제출한 주식대량보유보고서에 따르면 내셔널인뎀니티컴퍼니는 지난 24일 기준 이토추상사 지분 5.02%, 마루베니 5.06%, 미쓰이물산 5.03%, 스미토모상사 5.04%, 미쓰비시상사 5.04%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5대 상사의 지분을 사들이는 데 6700억엔(약 7조5293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추산된다. 벅셔해서웨이는 “순수투자 목적으로 5대 종합상사의 지분을 사들였으며 주가 변동 상황을 봐가며 지분을 9.9%까지 늘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버핏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벅셔해서웨이가 5대 상사와 일본의 미래를 함께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이어 “전 세계에서 합작사업을 벌이는 5대 상사와 함께 이익을 올릴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벅셔해서웨이의 보험, 에너지, 금속가공 계열사들과 협업할 뜻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버핏의 첫 일본 상장사 투자라고 전했다.

지난 30일로 90세 생일을 맞은 버핏은 6월 말 기준 2074억달러(약 246조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미국 주식으로 애플,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코카콜라 등 4개 회사가 전체 투자의 70%를 차지한다. 해외 기업 투자는 중국 전기차 1위 BYD 등 극소수다. 절삭공구 계열사인 IMC그룹을 통해 한국 대구텍과 일본 탕가로이 등에 투자했지만 모두 비상장사다.

버핏이 7조원 이상을 들여 일본 5대 종합상사의 주식을 사들인 건 해외시장에서 저평가·우량주를 사들임으로써 미국 시장 의존도를 자연스럽게 낮추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철도와 자동차보험 등 90여 개에 달하는 투자회사가 코로나19 여파로 고전한 탓에 벅셔해서웨이는 올 1분기 497억달러의 적자를 냈다. 그동안 미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온 버핏은 미국 항공사 주식을 전량 매각하고, 은행주 일부를 파는 등 코로나19 이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 종합상사는 버핏의 투자 기준에 딱 들어맞는 해외 주식으로 분류된다. 하시즈메 고지 도쿄해상애셋매니지먼트 주식운용부장은 “상사주는 배당률이 높고 주가순자산배율(PBR)이 낮다”고 설명했다. 미쓰비시상사와 스미토모상사의 배당수익률은 5.32%와 5.04%로 도쿄증시 상장사 평균(약 2%)의 2배를 넘는다. 이토추상사를 제외한 4대 종합상사의 PBR은 0.7~0.8배에 그친다. 시가총액이 회사를 청산한 가치보다 낮을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저평가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종합상사들의 노력도 버핏의 마음을 끈 것으로 보인다. 미쓰비시상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실적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2000억엔의 배당총액을 내년까지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토추상사도 2018년 5월 발표한 중기경영계획을 통해 중장기 배당성향 목표를 26%에서 30%로 높이고, 자사주 2000억엔어치를 중장기적으로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일본 종합상사들이 전 세계에 보유한 금광, 철광석, 아연 등 자원개발권도 버핏의 투자 포인트로 분석된다. 평소 “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육면체”라고 비판해온 버핏은 지난 14일 캐나다 금광회사 배릭골드 주식을 5억6200만달러어치 매입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