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들이 기업을 상대로 잇따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재직 당시 회사 측의 관리 소홀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전염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것이다.

미 로펌인 헌튼앤드루스커스의 조사 결과 지난달 하순까지 코로나19와 관련해 제기된 고용·노동 분쟁은 총 69건으로 집계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월마트와 세이프웨이, 타이슨푸드 등 대기업은 물론 일부 보건·의료시설 등도 피소됐다.

시카고 교외의 월마트에서 야간 관리직으로 일했던 완도 에반스(51)는 지난 3월 하순 매니저에게 발열 기침 등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호소했으나 “업무에 복귀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며칠 뒤 몸 상태가 악화한 뒤에야 야간 근무조에서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틀 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에반스 유족은 “회사 측이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정부기관의 전염병 관리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월마트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기업들은 일부 근로자의 사망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적극 반박하고 나섰다. 사망 근로자들이 언제, 어떤 형태로 감염됐는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회사 밖에서 옮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정부 지시에 따라 근로자 간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의무화, 직장 내 방역 등 모든 필요 조치를 취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브렌트 워커 변호사는 “코로나19로 사망한 근로자들이 단순히 운이 나빴느냐 아니면 기업이 진짜 방역에 소홀했느냐를 가려내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미 공화당이 추진 중인 코로나 지원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기업들이 이런 피소 위협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법안에 따르면 기업·학교·교회 등이 ‘특별히 잘못한 행위’를 하지 않은 한 관련 소송에서 면책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1일 현재 15만8000여 명이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