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난수표 된 부동산 규제
“전세대출 제한에 예외는 없나요?” “해외에 있어 재건축 아파트 2년 거주 요건을 못 채우면 현금청산 대상인가요?”

정부가 ‘6·17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자 이틀째 관계부처와 은행, 세무서 등에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인터넷 부동산 게시판도 질문으로 도배됐다. 지난 2월과 5월 내놓은 대책의 온기가 식기도 전에 새 규제를 내놓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정부는 이번에 수도권의 ‘갭투자(전세 안고 매수)’를 막기 위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을 조이는 강수를 뒀다.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뒤 수도권 대부분 지역에서 시가 3억원 초과 아파트를 사면 대출금을 회수한다. 재건축 아파트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법인 명의로 취득한 부동산에 대한 세금은 ‘폭탄’ 수준으로 무거워진다.

연이은 규제에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헷갈려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7개월 동안 21차례 대책 발표를 했으니 1.7개월마다 규제를 내놓은 셈이다. 문제는 규제지역과 세금, 대출, 청약제도까지 수차례 바뀌다 보니 규제 자체가 ‘난수표’처럼 됐다는 점이다.

세금은 고차방정식 수준이다. 양도소득세의 경우 보유 주택 수와 보유 기간, 공제율 등을 수학 문제처럼 풀어야 한다. 작년 ‘12·16 부동산 대책’으로 장기보유특별공제에 거주 기간을 연동해 더 복잡해졌다. 이번엔 법인 명의 주택 소유자들에게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세금 문제의 해답을 찾아 은행과 공인중개소, 세무서를 전전하기 일쑤다.

대출도 마찬가지다. 주담대 한도는 규제지역 여부와 주택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조정대상지역에선 담보인정비율(LTV)이 9억원 이하에 대해 50%, 9억원 초과분엔 30%가 적용된다.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에선 이 한도가 9억원 이하 40%, 9억원 초과 20%다. 15억원 초과는 0%로 바뀐다. 이번 대책에서 주담대를 받아 규제지역 내 집을 매입하면 6개월 안에 기존 집을 처분하고 신규 주택으로 이사 가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됐다. 이런 내용을 모른 채 집을 샀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규제마다 예외조항도 있어 꼼꼼히 살펴야 한다.

잦은 규제 발표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지고 있다. 올 2월 정부는 “과열지역만 ‘핀셋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서 또다시 광범위한 지역을 규제로 묶었다. 시장에선 “두어 달 뒤 경기 김포, 파주 등 풍선효과 지역을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을 것”이라는 냉소 섞인 전망도 나온다.

규제가 쌓일수록 시장의 내성도 커졌다.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3억원 올라 9억원을 훌쩍 넘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자조적인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며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이 규제의 역효과로 더 멀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