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1만5천명 유엔군 배속…정예 요원들로 구성된 '화랑부대' 맹활약
장진호 전투서 혁혁한 전공…중공군 진격 지연시켜 흥남철수 가능케 해
[6.25전쟁 70년] 미 해병대가 극찬한 한국 경찰 '화랑부대'
"한국 경찰의 기관총에 죽은 적군의 수는 200명이 넘었다.

그들의 영웅적인 희생은 (미국 해병대) 대대 지휘본부 지역으로 진격하던 적군을 확실하게 저지했다.

"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해병 1사단 5연대 3대대장 로버트 태플릿(1918∼2004년) 중령은 2002년 발간한 저서 '다크 호스 식스'(Dark Horse Six)에서 한국 경찰을 이처럼 높이 평가했다.

태플릿 중령은 1950년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함경남도 장진 일대에서 유엔군과 중공군이 벌인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대를 이끌었다.

유엔군 1만7천여명, 중공군 4만8천여명이 죽거나 다친 이 전투에서 한국 경찰 '화랑부대'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한국 경찰 약 1만5천명은 유엔군에 배속돼 참전했다.

당시 조병옥 내무부 장관은 '유엔군이 북한인과 남한인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을 노린 북한군이 피난민 등을 가장해 아군을 교란할 수 있다'며 한국 경찰의 유엔군 배속을 요청했고, 미군 사령관은 이를 받아들였다.

특히 미군으로부터 특별 훈련을 받은 정예 요원들인 '화랑부대' 경찰관들은 말도 안 통하고 지리도 어두운 유엔군을 도와 큰 역할을 했다.

화랑부대는 크게 미 육군 7사단에 배속된 대대(300여명), 미 해병 1사단에 배속된 소대(40여명)로 구분된다.

화랑부대 소대는 경남 창원에서부터 미 해병 1사단에 배속돼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한 뒤 유엔군과 함께 북진했다.

[6.25전쟁 70년] 미 해병대가 극찬한 한국 경찰 '화랑부대'
2개월 뒤 미군과 중공군이 맞붙은 장진호 전투에서 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태플린 중령은 저서에서 "우리 대대 지휘본부 보호 부대가 사령부 바로 위의 산등성이에서 방어하는 동안 화랑부대는 엄청난 수의 중공군을 향해 위압적인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고 회고했다.

화랑부대 소대는 중공군의 진격을 2주간 지연 시켜 아군의 집결 시간을 확보하는 데 일조했다.

중공군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상황에서 미군과 국군은 그 덕분에 흥남철수작전을 벌일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는 모두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흥남철수 때 피란민을 구출한 선박 중 하나인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경남 거제에 정착한 지 2년 만에 문 대통령이 태어났다.

정부는 1957년 작성된 '유엔종군기장 명부' 등을 최근 발견해 장진호 전투에서 활약한 경찰 18명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 전투에서 많은 화랑부대 소속 경찰이 숨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명단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화랑부대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2∼9월 사이 해산됐다.

해산 사유는 전해지지 않는다.

[6.25전쟁 70년] 미 해병대가 극찬한 한국 경찰 '화랑부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