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입구에 임대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경DB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입구에 임대주택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경DB
서울시가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4000가구에 달하는 임대주택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강남구 및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강남구와 SH공사는 일반분양 물량을 전부 없애고 100%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서울시의 개발계획에 합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그러나 사업 재원을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를 통해 조달하더라도 로또가 될 수 있는 일반분양을 막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는 입장이다.

사전협의 없이 ‘100% 임대’ 발표

구룡마을 개발방식 놓고…서울시·강남구 갈등
서울시가 지난 11일 시보에 게재한 ‘구룡마을 실시계획 인가’에는 당초 강남구 및 SH공사와 구룡마을 공급에 관해 합의한 내용이 나온다. 이 계획에 따르면 서울시는 구룡마을에 일반분양 1731가구와 임대주택 1107가구 등 총 2838가구를 조성할 예정이었다. 최고 35층의 주상복합과 20층 아파트, 근린생활 시설 등이 계획에 들어갔다.

그러나 서울시는 5일 “구룡마을에 임대주택만 4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향후 강남구, SH공사, 토지주 등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련 세부 사항을 논의한 뒤 전면 임대주택 공급으로 계획을 수정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사업 시행자가 임대주택을 검토하길 바란다”는 내용을 인가 조건에 넣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남구 노른자위인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일반분양을 하면 ‘로또 청약’ 광풍이 불가피하다”며 100% 임대주택 공급 이유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실시계획은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강남구 및 SH공사와 논의해 4000가구를 모두 임대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남구와 SH공사는 서울시의 100% 임대주택 계획이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구룡마을 개발계획은 11일 고시된 실시계획에서 아직 바뀐 게 없다”며 “100% 임대주택이라는 서울시 발표는 사전 협의도 없었고 무엇보다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업시행자인 SH공사도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일반분양을 하지 않으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없어 임대주택 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SH공사 관계자는 “무한정 적자를 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일반분양 없이 개발하라니 난감하다”고 했다.

주민들 “또 사업 지연되나” 우려

서울시는 일반분양을 통한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리츠로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설명했다. 리츠를 통해 임대주택을 짓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토지 소유주와 사업시행자인 SH공사가 나누자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3.3㎡당 500만~600만원을 보상하는 토지수용 방식은 토지주들이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토지주가 현물출자를 하고 SH공사가 임대를 해 수익을 나누는 방안이 사업 추진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번 실시계획에 담긴 예상 토지 보상비는 4344억4700만원으로 책정됐다. 구룡마을은 전체 면적이 26만6502㎡ 규모인데, 이 중 사유지 23만9938㎡를 581명이 나눠 갖고 있다. 토지주들이 받을 수 있는 보상비는 3.3㎡당 평균 597만원 정도다. 개포동 신축 아파트 3.3㎡당 분양가인 4750만원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서울시의 이번 결정으로 사업이 다시 지연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1107가구의 거주자와 581명의 토지주는 6개 단체로 나뉘어 있어 의견일치가 쉽지 않다. 토지주 가운데서도 현금 보상을 원하는 쪽과 아파트 분양을 받겠다는 쪽이 갈등을 빚고 있다.

1980년대 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서울의 대표 판자촌인 구룡마을은 2012년 8월 도시개발구역 지정 고시가 났으나 개발계획이 수립되지 않아 2014년 해제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선 후 사업 재추진을 발표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