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10만원 '반전세' 확산…집주인 세금 낼 돈 떠넘겨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아파트 등을 소유한 A씨는 최근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면서 기존 보증금 9억5000만원짜리 전세를 반전세로 돌렸다. 보증금을 9억원으로 내리고 월세 15만원을 받기로 했다. 올해부터 3주택 이상 다주택자는 전세보증금에 대해서도 간주임대료를 계산해 세금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A씨는 “예금 금리가 낮아 전세보증금을 조금 더 높여도 큰 이득이 없다”며 “차라리 월세를 받아 세금 내는 데 보태는 게 낫다”고 말했다.

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기존 전세보증금 시세와 비슷하거나 10%가량 낮춘 보증금에 월세를 10만~20만원 받는 반전세가 유행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초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역삼푸르지오 전용면적 59㎡는 보증금 7억1000만원에 월세 20만원으로 계약됐다. 이 단지 같은 주택형의 전세 시세는 약 8억원이다. 전세가가 비슷한 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 전용 84㎡도 지난달 말 보증금 7억2000만원에 월세 13만원짜리 반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이 밖에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동작구 흑석동 흑석한강센트레빌2차 등 서울 전역에서 비슷한 형태의 임대차 계약이 늘었다.

이 같은 임대차 계약이 유행하는 것은 올해부터 전세보증금에도 소득세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주택임대소득법에 따라 부부 합산 보유 주택이 세 채 이상이면 월세뿐만 아니라 전세보증금에 대해서도 간주임대료를 계산해 세금을 낸다. 2018년까지는 또 총임대소득이 2000만원 이하면 비과세였으나 올해부터는 세금을 내야 한다.

임차인에게 세금 부담이 전가되는 모양새지만 전세 매물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임차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 같은 조건을 수용하고 있다.

월간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평균 158.3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11.7)에 비해 급등했다. 지수가 100 이상이고 수치가 높을수록 전세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세무사)은 “임대소득이 잡히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돼 매달 건강보험료 부담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며 “역대급 저금리 시대에 세금과 각종 부담금이 늘어나자 전세를 반전세 혹은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