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도 '연기하라'고 권고했던 조혈모세포이식, 한국서 가능했던 이유
지난 5일 인도 뉴델리에서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5살 A양이 7000㎞를 비행해 한국을 찾았다.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된 A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뒤 바로 무균병동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시대에도 중증 혈액암 환자를 제약없이 치료하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보여준 사례다.

이 같은 국내 의료 환경에 다시 한 번 세계 의료진이 주목했다. 세계 최대규모 혈액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성모병원의 코로나19 극복 경험이 국제학술지에 실리면서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은 코로나19 대응전략에 대한 연구 결과가 영국혈액학회지에 실렸다고 21일 발표했다.

면역 기능이 떨어진 혈액질환자들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취약하다. 병원은 코로나19를 옮기기 쉬운 위험한 장소다.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던 3~4월 유럽조혈모세포이식학회조차 급하지 않은 혈액암 환자의 항암치료나 조혈모세포이식을 연기하도록 권고하는 지침을 발표한 이유다. 미국에 있는 병원들도 혈액암 환자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을 최소화하고 있다.

한국은 달랐다. 올해 1월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대구·경북 등에서 대규모 유행이 이어졌지만 서울성모병원의 조혈모세포이식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늘었다. 이 병원의 조혈모세포이식 건수는 지난해 1월과 2월, 3월 각각 45건, 43건, 41건이었지만 올해 1월과 2월, 3월에는 52건, 44건, 50건을 진행했다. 매달 9000명 이상의 외래환자가 찾아오는 것도 변함이 없었다.

병원 내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전략을 가동했기 때문이다. 병원을 찾는 환자는 모두 문진표를 작성토록해 1차 스크리닝했다. 의심 증상이 있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들의 동선은 철저히 분리했다.

이들은 선별진료소, 안심진료소, 비대면 진료 등을 통해 2차 스크리닝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의심환자는 바로 별도 격리 병동에 입원시켰다. 다른 층과 공기가 섞이지 않는 병원 한층을 모두 비운 뒤 중증 환자, 폐렴환자 등을 분리 입원토록했다.

연구팀은 "세계적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지속되면서 각 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의 원내 유입을 막기 위한 노력을 했다"며 "서울성모병원은 진료를 제한하는 것보다 별도 안심진료소를 운영하는 등 적극적 대응전략을 세워 코로나19 대유행에서도 환자들을 그대로 진료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동욱 혈액병원장은 "이번 논문이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로 정상 진료를 못하는 세계 의사와 환자들에게 참고가 돼 중증혈액질환자 진료가 차질없이 진행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