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5만명을 넘었다는 추정이 나왔다. 영국 정부가 지금까지 공식 집계한 사망자보다 2만명 가량 많다는 뜻이다. 정부의 부실한 사망자 통계가 봉쇄조치 완화 등 코로나19 방역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공영 BBC는 12일(현지시간) “정부가 집계하는 사망자 수치는 상당수가 누락돼 있다”며 “대부분의 통계학자들은 영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5만명을 넘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5시 기준 영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3만2692명이다. 전날 대비 627명 늘었다. 이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망자 기준이다. 확진 판정을 받지 못한 채 사망한 사람들은 집계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영국 정부는 이달 초까지는 요양원 등 지역사회 사망자는 제외한 채 병원 사망자만 공식 집계에 포함시켰다. 요양원 등 지역사회 사망자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후에서야 공식 집계에 포함시켰다. 정부의 공식 집계에 포함되기 이전의 지역사회 사망자 수치는 사실상 누락됐다는 뜻이다.

일간 가디언은 “요양원 입소자에 대한 진단검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것인지에 대한 확인조차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전국 요양원 대표기구인 케어 잉글랜드는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3월 중순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한달여 동안 요양원 사망자가 75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사망자도 영국 정부 통계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BBC는 통계학자들의 설명과 자체 통계분석을 활용해 영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이달 1일 기준 이미 5만명을 넘었다고 전했다. 당시 영국 정부가 발표한 이날 기준 코로나19 사망자는 2만8000여명이었다. BBC는 “영국의 실제 사망자는 정부의 공식 집계보다 두 배 가량 많을 수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부실한 사망자 수치가 봉쇄조치 완화 등 향후 방역과정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 BBC의 설명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실제로는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도 정부의 공식 집계에만 의존할 경우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영국은 정부의 공식집계 수치만으로도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코로나19 사망자가 많은 국가다. 유럽에서 사망자가 3만명을 넘은 국가는 영국과 이탈리아뿐이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국제적인 비교는 의미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최근 하원에서 열린 대정부질문(PMQ)에서 “전 세계의 사망률을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정부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시기에 맞춰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 다른 국가에 비해 영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영국 성인 1654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는 영국 정부의 봉쇄조치 도입이 너무 늦었다고 답했다. 시기적절했다고 답한 비율은 29%에 불과했다. 영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에 대비해 제대로 준비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7%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22%에 불과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