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기관에서 이달 첫째 주 전화진료를 받은 환자가 5만 명을 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허용된 의사와 환자 간 전화진료를 통해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세계 곳곳에서 원격진료가 새로운 진료 모델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42일 만에…전화진료 5만건 넘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월 24일부터 한시적으로 의사가 환자를 전화로 진료·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환자가 직접 병원을 찾아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국내 의료법에선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금지하고 있다.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19일 “3월에는 전화진료가 2만6520건이었지만 이후 빠르게 증가해 4월 첫째 주엔 5만1000건 넘게 증가했다”고 했다.

규모가 작은 동네의원은 물론 대형 대학병원에서 전화진료를 받은 환자도 늘었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국내 4대 병원에서 이달 7일까지 이뤄진 전화진료만 1만6285건이다. 44일간 매일 370명이 원격진료를 받았다. 이 중 절반 이상은 환자가 의사와의 전화통화를 거쳐 약 처방도 받았다. 환자 만족도는 높았다. 최기준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만성질환자는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아 약을 먹지 않으면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다”며 “병원을 찾기 어려워하던 환자가 전화진료를 받은 뒤 편하고 좋다고 했다”고 전했다.

병원은 감염병에 취약한 시설이다. 환자가 치료를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非)대면 진료 방식인 원격진료가 이런 감염 위험을 줄여줄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국도 원격진료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 13일부터 환자가 의사에게 받는 첫 진료에도 원격진료를 허용했다. 전화나 태블릿PC 등을 활용해 환자를 진료하면 의사는 환자와 만나 진료할 때 받는 진료비(2880엔)의 4분의 3 정도인 2140엔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정부도 나섰다. 지난달 30일 공공보험 메디케어를 통해 원격진료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입자는 6000만 명에 이른다. 이전에는 정기 진료 환자만 제한적으로 원격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앞으로는 모든 의료기관에서 원격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배정된 예산은 5억달러(약 6080억원)다.

변화를 요구하는 의학계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세계적 학술지 NEJM에는 ‘코로나19와 헬스케어 디지털 혁명’이라는 논평이 실렸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아날로그 방식 의료시스템의 한계를 깨닫고 디지털 혁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다.

시리나 키사라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 등은 “면대면 진료 방식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될 위험이 있다”며 “화상진료는 물론 스마트폰 앱, 챗봇 등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구글보이스 등 음성 시스템이나 스마트워치 등 모바일센서 같은 기술도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