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3D 직업 종사자’였다. 개발도상국에서 찾아와 허드렛일하면서 본국으로 생활비를 부치는 사람들.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온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이런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국의 경제 발전으로 선진국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외국인 직원을 적극 채용한 것도 변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민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국내에서 전문직과 사무직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4만8000여 명에 달한다. 어느새 ‘노란 머리 상사’ ‘푸른 눈의 신입사원’에 익숙해진 김과장 이대리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김과장 & 이대리] 기업에 부는 세계화 바람
할랄 음식 제공하고 기도실 마련

먼 나라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이 가장 그리운 건 고향의 밥이다. 한국인의 입에 딱 맞는 한식도 이들에게는 입맛에 맞지 않는 생소한 음식일 뿐. 종교적인 이유로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한정돼 있다면 식사의 어려움은 배가된다.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한 기업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내식당에 맞춤형 메뉴를 내놓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구내식당에서 할랄(이슬람 율법에 의해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제품) 음식을 제공한다. 이 회사에 다니는 박 사원은 “구내식당에 아예 화덕이 있어 할랄 메뉴를 선택하면 직접 구운 난(빵)을 먹을 수 있다”며 “전문 식당 부럽지 않게 맛이 좋아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 직원들도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외국인 직원들이 종교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기도실을 마련한 기업도 많다. 무슬림은 하루 다섯 번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한다. 기업들은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사무실에서 기도를 하다가 생기는 갈등을 막기 위해 아예 따로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GS건설 대림산업 SK건설 등 중동 지역 수주가 많은 회사들이 대표적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적응을 돕기 위해 은행·병원 방문 등 실생활에 꼭 필요한 서비스를 도와주는 곳도 있다. 국내 한 대기업에 입사한 러시아인 A씨는 최근 사내 ‘글로벌 헬프 데스크’에서 지원하는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은행 계좌를 개설했다. 이 회사는 사옥 엘리베이터의 디지털 광고판과 사내 소식지 등에도 한국어와 영어를 병행 표기하고 있다.

회식 최소화하고 회의는 용건만

외국인 임직원이 늘면서 ‘한국적인 사내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초 한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 한국법인에는 호주인 사장이 새로 부임했다. 4년 넘게 한국인이 이끌며 ‘현지화’된 회사에 외국인이 사장으로 오면서 직원 사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이 회사의 김 매니저는 “당장 다음주에 사장 주재로 팀별 오찬이 있는데 영어로 자기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면서도 “글로벌 기업다운 수평적인 사내 문화가 자리잡을 것 같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회의 시간이나 회식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기업들도 있다. 수도권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조 사원은 “회의에 외국인이 한 명이라도 참여하면 영어로 대화하라는 게 회사 방침”이라며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직원이 드물다 보니 회의가 핵심 용건만 압축적으로 말하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종교적 이유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외국인 직원들 때문에 회식 메뉴를 정하기 어려워졌다”며 “회식 횟수 자체가 줄어들어 한국인 직원도 다들 좋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근로자 채용이 한국인 직원들의 글로벌 감각을 키우는 계기도 된다고 김과장 이대리들은 입을 모은다.

새로운 사내 갈등 생기기도

기업과 직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국인과 한국인 직원들의 갈등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는 게 직장인들의 설명이다. 서울의 한 중견 기업에 다니는 최 사원은 같은 팀에 있는 유럽 국가 출신 직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는 “해당 직원이 품이 많이 드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쉬운 일만 하려고 요령을 부린다”며 “태도의 문제여서 징계를 건의하기도 어렵고,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주의를 주기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때로는 외국인 근로자들끼리의 갈등도 문제가 된다. 수도권의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김 팀장은 최근 인도인 개발자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느라 진땀을 뺐다. 인도의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가 화근이었다. 김 팀장은 “인도인끼리는 성씨만으로 어느 지방 출신이고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며 “상대적으로 높은 계급의 직원들과 낮은 계급의 직원들이 뭔가를 의논하다가 감정이 상했다고 하는데, 설명을 들었는데도 이들이 왜 싸웠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한국계 외국인을 뜻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 사원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다니는 김 사원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미국에서 나온 한국계 미국인이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점심식사로 샐러드 도시락을 주로 먹는다. 하지만 그의 팀장은 ‘끈끈한 팀워크를 위해 다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김 사원은 “회식 참여와 식사 제안을 몇 번 거절했더니 팀장과 팀원들이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며 “내가 진짜 ‘노란 머리’ 외국인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