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린폴리시 진단…러, 미국과 달리 중동에선 '모두의 친구'
전문가 "푸틴, 미국 평판 더럽히고 러 영향력 키울 방안 모색"
"미국-이란 치킨게임에 '거물 중재자' 러시아 중동입지 확장"
미국이 이란과의 대립으로 중동 내 입지가 흔들린 틈을 타 러시아가 발 빠르게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가 10일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5년 시리아 내전에 전격 개입한 이후, 중동 지역에서 반목하는 모든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이례적인 중재자'로 급부상했다.

국제 정세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역내 입지를 거듭 굳히기 위해 미국과 이란의 갈등을 활용해 미국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재단의 안드레아 켄들 테일러 선임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이 극도로 기회주의적인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테일러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일방주의 배격을 자신의 지상 목표로 삼고 있다"며 "미국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해 이란 군부실세(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암살 사건과 그에 따른 불안정한 정세 등 모든 기회를 이용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됐던 지난 7일 터키 순방길에 시리아를 전격 방문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미국과 이란뿐만 아니라, 중국과 터키 외무장관과 연쇄적으로 통화하며 "미국의 공습은 중대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국제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미국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인 근동정책연구소의 안나 보르시체프스카야 선임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이 중동에서 절대 한쪽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며 "중재자로서 관망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최선의 카드지만, 행동에 나선다면 외교적인 방법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른 전문가들 역시 러시아가 솔레이마니 사령관 피살을 공식적으로 비난하면서도 이란을 지지하는 어떤 구체적인 행동도 약속하지 않는 등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란을 지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란 치킨게임에 '거물 중재자' 러시아 중동입지 확장"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 공격을 감행한 터키와 미국이 갈등을 겪을 때도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선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회담을 통해 터키-러시아 양국 군이 이 지역을 합동 순찰하는 대신 쿠르드족에 대한 휴전을 영구화하기로 합의하면서 미국과 터키의 물리적 충돌을 일단락시켰다.

그때에도 미군 철수로 생긴 공백을 러시아가 메우는 모양새가 되면서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이 지정학적 경쟁의 패배자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 지역에 있는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 오히려 러시아를 찾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란은 지난 8일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죽음에 대한 보복을 명분으로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겨냥해 미사일 공격을 강행했다.

당시 이란이 미국 본토 대신 그 우방국을 표적으로 삼겠다고 경고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 등 중동의 친미 국가들이 불안에 떨었다.

포린폴리시는 이들 국가가 미국이 자국을 이란의 보복에 노출되도록 내버려 뒀다고 판단할 경우 러시아의 개입을 요청하는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말 이라크와 레바논에서 이어진 반이란 시위가 미국의 공습 이후 반미 시위로 변모한 것도 러시아에는 중동 내 세력확장의 호재로 관측된다.

마크 카츠 조지메이슨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푸틴 대통령은 중동 지역 내 반미 여론이 고조되는 것을 원했지만, 스스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이번 이란과의 충돌로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위해 (반미 여론을) 만들어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