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0' 하나 더 써내서…9억 땅, 90억에 낙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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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포기해도 10% 입찰보증금 내야
차순위 응찰자·재경매 참가자도 피해
차순위 응찰자·재경매 참가자도 피해

◆경매 물리려면 보증금 포기해야

당초 이 경매는 지난해 10월 한 차례 낙찰이 이뤄졌다. 낙찰가는 이번 입찰보다 10배가량 높은 41억3900만원이다. 최저입찰가 3억6200만원으로 시작한 3회차 입찰에서 한 응찰자가 4억1390만원을 쓰려다 실수로 0을 하나 더 붙인 것이다. 이 응찰자는 낙찰받지 않겠다며 법원에 매각불허가를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결국 입찰보증금 3620만원(최저입찰가의 10%)을 물고 잔금을 미납하는 방식으로 경매를 포기했다.
응찰자는 수천만원의 목돈을 날렸지만 채권자로 경매를 진행시켰던 은행은 앉아서 공돈을 벌었다. 채권자는 낙찰자가 경매를 포기할 경우 몰취된 보증금에 다음 회차 낙찰금액까지 더해 배당을 받는다. 억울한 건 4억2100만원을 써낸 차순위 응찰자다. 만약 경매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1등으로 낙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차순위·재경매 응찰자도 피해
과거엔 이 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법원이 응찰자의 실수를 받아들여 매각불허가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구제했다. 매각불허가란 경매를 무효로 돌리는 절차다. 2009년엔 울산에서 한 응찰자가 최저입찰가 6300만원짜리 아파트에 7330억원을 적어냈다가 매각불허가로 구제됐다.
하지만 2010년 대법원이 입찰표 오기입을 매각불허가 사유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최저입찰가의 10%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포기하면서 잔금을 미납하는 방식이 유일한 퇴로가 된 셈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매각불허가를 신청하려 할 경우 입찰표 오기입보단 송달 등의 다른 문제를 찾아 문제를 제기하는 게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입찰표 오기입은 낙찰자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2등 응찰자의 경우 차순위 매수신고 기회를 잃는다. 차순위 매수신고란 낙찰자가 잔금을 미납할 경우 재경매를 거치지 않고 2등 응찰자에게 낙찰 기회를 주는 제도다. 낙찰자가 써낸 가격에서 보증금을 뺀 금액 이상으로 응찰했을 때 가능하다. 예컨대 최저입찰가격이 5억원인 아파트에 대해 낙찰자가 6억원을 써낸 뒤 경매를 포기했다면 2등이 5억5000만원(최고응찰가 6억-보증금 5000만원) 이상을 써낸 경우에 한해 차순위 매수신고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낙찰자의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경매에선 이 같은 차순위 매수신고 자격이 아예 성립할 수 없다.
잔금미납으로 재경매가 이뤄질 때는 모든 경매 참가자들이 피해를 입는다. 다음 입찰에서 보증금이 최저입찰가의 20%로 두 배 오르기 때문이다. 5억짜리 경매에 필요한 보증금이 종전 5000만원에서 1억원이 되는 셈이다. 법원 또한 번거로운 재경매 절차를 다시 준비하고 진행해야 한다. 장근석 지지옥션 팀장은 “무차별적으로 구제할 경우 경매를 고의로 방해하는 등 매각불허가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며 “한순간의 실수로 큰 돈을 잃을 수 있는 만큼 경각심을 갖고 경매에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