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기초과학 발전과 인내심
한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배제된 뒤 자체 경쟁력을 갖는다고 온통 난리다. 정부도 2020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17.3% 많은 24조1000억원으로 편성하고 소재·부품·장비 분야에만 1조7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소재·부품·장비는 공학의 성과물이며, 공학은 물리학 화학 등 기초과학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런 기초과학은 1년간의 투자와 노력만으로 성과를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기초과학 분야에서만 노벨상 21개를 딴 일본은 각 수상자가 짧게는 20~30년 이상 한 분야에서 연구를 지속한 결과다.

한국 기초과학 연구는 ‘위기’에 가깝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초·중·고교 시절 배웠던 수학을 기억해 보면 그럴 것이다. 수학은 타고난 지능과 재능을 필요로 한다. 물리학 화학 등은 자연 현상을 수학식으로 모델링해 그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물리학 화학 등 기초과학을 근간으로 하는 공학은 결국 수학 이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과학적, 경제적, 사회적 원리, 실용지식이 더해져 인류 번영의 각종 장치, 도구 등 성과물이 만들어진다.

나는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전자공학은 70% 이상이 수학을 근간으로 하고, 물리학 화학 등 기본 원리가 나머지를 채우고 있다고 말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은 전자공학뿐 아니라 대부분의 공학이 그렇다. 물리학 화학 등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 인간 생활에 필요한 각종 제품이나 도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공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다고 해서 과제 자체를 갑자기 중단시키거나 국책연구기관의 과제 책임자가 연구 성과의 유무를 지속적으로 추궁당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기초과학 연구에 어려움이 많다. 수학 물리학 화학 등 기초과학은 단기간에 연구 성과를 내기 어렵다. 자연 현상을 분석해 인간의 편의를 위한 기술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초지능, 초연결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의 미래 경쟁력은 지능화 혁명에 대처하기 위한 독자적인 기술력 확보뿐이다.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기초과학 분야는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의 기초과학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고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하기 위한 전폭적인 예산 배정과 지원이 필요하다. 또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위해 아낌없는 격려는 물론, 묵묵히 지켜볼 줄 아는 인내심도 우리 사회에서 정착시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