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개도국, 후진국, 저개발국…
6·25전쟁이 끝난 195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였다. 북한(135달러)의 절반, 필리핀(299달러)의 4분의 1도 안 되는 최빈국이었다. 국제 용어로 빈곤국(poor nation)·후진국(backward country)·미개발국(underdeveloped country)이었다. 요즘은 이런 나라를 해당 국가의 발전 의지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최저개발국(least developed country)’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1960년대 산업화 기틀을 닦은 덕분에 1977년 1인당 소득 1000달러를 돌파하며 최저개발국에서 탈출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한국을 포함한 저개발국가들이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으로 불렸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에서 졸업한 것은 1994년 소득 1만달러 돌파 후 3년 만인 1997년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신흥공업국(newly industrializing country)’으로 분류됐다. 중공업 정책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국가들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이후 2006년 2만달러, 지난해 3만달러 국가에 진입했다. 지금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농업 분야만 제외하고 모두 선진국 대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경제란 국내외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유기체여서 언제든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국민소득 1만달러 진입 후 정체하는 ‘중간소득 함정’이나 2만~3만달러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신(新)중간소득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남미의 ‘포퓰리즘 환자’로 불리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유럽의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자본시장에서는 떠오르는 신흥국가를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이라고 부르지만 고위험 요소가 많아 선진국과는 차별한다. 한국은 미국 다우존스지수에서는 선진국,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지수에서는 ‘신흥시장’으로 취급되고 있다. 한·일 대립과 미·중 갈등이 장기화하면 우리 경제도 어느 순간에 후진(後進)할지 모른다.

한 나라를 후진국과 선진국으로 가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쓴 대런 애쓰모글루는 “한 국가의 운명은 경제적 요인에 정치적 선택이 더해질 때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한때 우리 두 배였던 북한 국민소득이 1200달러에 불과한 것을 보면서 경제와 정치, 국가 시스템의 차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