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김상조·이호승, 제조업 지키기 잘 할까
청와대는 2주 전인 지난달 19일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일류기업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려 ‘세계 제조 4대 강국’으로 부상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정책은 문재인 정부 통틀어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못 읽은 정책’으로 뽑힐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5년 전쯤 나왔다면 환영받았을 것이다. 지금은 한국과 같은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국가들이 공격받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자유무역 질서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

여기에 일본마저 가세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소재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내놨다. 다음달부터는 전략물자 수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다. 추가로 규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업 세계 4강’이 가능할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제조업은 잘 잡은 키워드다. 세계 무역전쟁의 본질이 제조업 쟁탈전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단어인 르네상스가 문제다. ‘부흥’이라는 뜻이 담긴 르네상스를 제조업에 붙이는 게 적절한가. 혹시 우리의 과거를 ‘암흑기’로 단정하려는 의도는 아닌가.

맥킨지글로벌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 세계 순위는 1985년 15위, 1995년 9위, 2005년 8위, 2015년 5위다. 우리 앞에 있는 국가는 이제 중국 미국 일본 독일뿐이다. 대단한 성과다.

제조업 세계 4강이 되려면 독일을 제쳐야 한다. 2017년 기준 독일 제조업의 부가가치 생산액은 7599억달러, 한국은 4220억달러다. 뒤집기에는 격차가 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의무화, 법인세 인상 등으로 제조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커졌다. 공장 해외이전 급증, 국내 설비투자 부진, 수출 급감 등 나쁜 뉴스투성이다. 세계 4강 진입이 아니라 역전당할 판이다. 우리 바로 뒤에 인도(3895억달러)가 있다. 제조업 르네상스가 아니라 ‘제조업 지키기’로 개명해야 한다.

한국 제조업이 급성장한 데는 외교가 큰 역할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이승만 정부는 미국 주도 자유무역체제에 재빨리 합류했다. 박정희 정부는 1960년대 한·일 국교 정상화로 일본 시장과 자본, 기술 협력을 이끌어냈다.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에는 노태우 정부가 과감한 북방정책으로 중국 등 새 시장을 열었다. 2000년대 들어 노무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시장 개방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였다. 해외시장을 확대하는 이런 외교정책들이 꾸준히 나왔기 때문에 제조업 강국이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산업정책이 없다고 말하는데, 진짜로 없는 것은 외교정책이다. 외국은 ‘나라 밖에 있는 시장’이다. 외교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외교에 실패했다는 것은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일본과의 외교도 마찬가지다. 수출 제한 조치는 추후 협상으로 얼마든지 풀 수 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의 마음을 열지 못하면 시장 문도 열 수 없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감정은 최근 매우 좋지 않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만난 이와야 다케시 일본 국방상이 웃는 모습으로 사진에 찍혔다고 해서 호되게 비난받았을 정도다.

일본은 글로벌 제조업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국가다.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해서도 반드시 협력 체제를 회복해야 한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감정적 애국주의로 대응하는 것도 좋지 않다.

청와대는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을 선포한 지 이틀 만에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을 교체했다. 신임 김상조 정책실장은 시민단체 출신의 ‘재벌 공격수’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호승 경제수석은 기획재정부 출신의 경제정책 전문가다. 두 사람 모두 제조업 정책과 통상·외교 문제를 다뤄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국내용’이다.

주요국은 글로벌 제조업 패권을 놓고 치열한 통상·외교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소득주도성장이나 공정경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국내 이슈를 다루던 사람들을 컨트롤타워에 앉힌 셈이다. 글로벌 제조업 지키기 전쟁에서 이들이 잘 싸울지 걱정이다.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