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홍콩 시위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지난주 홍콩 시위가 던진 화두다. 시위 자체는 큰 사고 없이 끝났다. 사람들이 놀란 것은 시위를 벌이게 된 이유였다.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도 범죄인을 넘겨줄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이 문제였다.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 법 개정안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격렬하게 저항했다. 왜 그랬을까.

홍콩 시위는 강대국 뒤에 숨어 있는 실체를 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퉁러완 서점 관계자 5명 실종사건’은 무엇이고, 홍콩에 있던 사람이 왜 갑자기 사라졌다는 말인가. 이런 사건들을 날카롭게 파헤쳐 실체를 알아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과 기술패권 다툼에 시선을 빼앗겼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았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국가다. 인민해방군은 공산당에 충성하는 조직이다. 1980년대 초 덩샤오핑 주석은 공산당이 아니라 정부에 충성하는 조직으로 인민해방군을 바꾸려는 체제 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군부와 당 원로들의 반발에 부딪쳐 어정쩡한 타협을 했다. 1989년 베이징 톈안먼 시위 이후 이마저도 취소됐다. 군에 진압과 발포 명령을 내린 곳은 정부가 아니라 당 소속 군사위원회였다.

시진핑 국가주석 시대로 접어들면서 군의 무조건적인 충성은 더 강조됐다. 미·중 패권전쟁 가능성을 분석한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에 따르면 시 주석은 사익을 추구하는 장군 수백 명의 권력을 박탈한 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편에 설 충성스러운 장교들’을 조심스레 골랐다. 최고지도자의 신뢰성은 군인들이 자신의 동료와 시민을 쏘게 만들 수 있는 명령 체계를 확보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게 시 주석의 소신이다. 소련이 붕괴한 것도 ‘당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군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홍콩 시위를 ‘피플 파워의 승리’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도 이런 중국의 실체 때문이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법 개정안을 무기한 연기하는 기자회견에 앞서 한정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났다. 이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앞두고 유혈 사태를 피하는 쪽으로 당이 결정을 내린 것이다.

법치(法治) 역시 공산당 통제 아래 있다. 한국의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중국 최고인민법원장은 언제나 당 인사가 맡는다. 저우창 최고인민법원장은 후난성 당위원회 서기를 지낸 인물이다. 직전 최고인민법원장이었던 왕성쥔(2008~2013년)은 안후이성의 지방 경찰과 베이징 국가 공안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베이징지국장을 지낸 리처드 맥그레거는 “미국으로 치면 (왕성쥔은) 한 시카고 경찰이 범죄 소탕의 공로를 인정받아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돼 일하다가 미국 대법원장으로 선임된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유럽 등이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을 때 안전판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중국은 노골적으로 경제력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일본 정부가 영해침범 혐의로 중국 어부들을 억류하자 희토류(희귀금속)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압박을 가했다. 그해 노벨상위원회가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를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노르웨이 연어 수입을 중단했다. 2012년에는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를 점령한 것에 필리핀 정부가 강력 반발하자 바나나 수입 검역을 지연시켜 부두에서 몽땅 썩게 했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2위 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런 중국의 존재를 주변국은 커다란 위협으로 느낀다. 시민사회와 문화 등 사회 전반의 가치를 높이기보다 더 강력한 일당 독재와 감시·통제를 추구한 탓이다. 중국을 친구라고 느끼는 국가들은 거의 없다. 중국과 동맹을 맺은 국가도 북한 한 곳뿐이다. 60여 개 동맹국을 확보한 미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지금의 중국을 주요 2개국(G2)으로 보고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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