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호국보훈음악회’에서 홍석원 음악감독이 이끄는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을 연주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지난 2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호국보훈음악회’에서 홍석원 음악감독이 이끄는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을 연주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100인조 오케스트라가 일제히 뿜어내는 웅장한 음량이 공연장을 울렸다. 50여 분간 차곡차곡 쌓아올린 에너지가 마침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위풍당당한 금관이 휘몰아치고 현악과 목관이 넘실댔다. 거인이 포효하는 듯한 30대 젊은 지휘자의 힘찬 손짓에 호른 주자들이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나 ‘승리’의 테마를 연주했다. 여러 타악기가 가세하자 관객의 몰입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4악장의 종결부가 끝나자 숨죽이던 객석에선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지난 2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호국보훈음악회’에서 홍석원 음악감독이 이끄는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한경필)는 한 편의 장대한 성장 드라마를 썼다. 홍 감독이 공연 전 설명한 대로 “‘미완성’의 젊은이(군인)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당당한 ‘거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음악으로 들려줬다. 역사에 남은 전쟁의 상흔을 되새기고 순국선열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자리를 음악의 감동으로 채웠다.

국방부와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한 이날 음악회는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으로 막을 올렸다.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콘트라베이스로 시작해 켜켜이 쌓이는 현에 맞춰 클라리넷과 오보에가 슈베르트 특유의 서정적이고 애수 어린 주제 선율을 연주했다. 홍 감독은 마치 수줍고 내성적이었던 슈베르트를 보여주듯 담담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절제하는 듯한 동작으로 달콤하면서도 아련하게 흐르는 곡을 마무리하며 짙은 여운을 남겼다.

홍 감독이 2부 메인 프로그램으로 선택한 곡은 말러의 교향곡 1번. 20대 청년 말러의 고뇌와 방황, 원대한 구상과 야심찬 포부가 드러나는 곡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러의 색깔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9월 창단 후 한경필이 말러를 연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 감독은 프로그램을 결정한 뒤 “단원들에게 목표 의식을 심어주고 레퍼토리도 늘려가고 싶다”며 “무모할 수도 있고 욕심이라고 할지 몰라도 도전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도와 도전은 의미있었다. 마치 1부 ‘미완성’에서 숨을 골랐다는 듯이 2부에선 응집된 에너지를 뿜어냈다. 홍 감독은 음악을 온몸으로 표현해내며 1부와 달리 역동적인 지휘를 선보였다. 방황하고 고뇌하던 청년이 격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세상을 향해 패기있게 출사표를 던지는 젊은이로 변신해가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동틀 무렵 깨어나는 자연의 나른함 속에 목관들이 ‘거인’을 깨우는 1악장을 지나 오스트리아 민속 춤곡인 렌틀러의 흥겨운 리듬과 선율이 흐르는 2악장으로 연결됐다. 홍 감독은 선율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으로 관악기들의 소리를 이끌어내 보는 재미를 더했다. 팀파니의 희미한 연타에 이어지는 더블베이스와 바순의 선율 연주가 인상적인 3악장을 지나 심벌즈 신호에 맞춰 굉음과 불협화음이 요란하게 몰아치는 4악장이 시작됐다. 온갖 고초와 사투 끝에 마침내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거인의 발걸음을 홍 감독은 자신만의 템포로 이끌어냈다.

젊은 지휘자와 한경필 단원들의 열정과 멋진 호흡이 이뤄내는 폭발적인 피날레로 이날 음악회의 드라마는 마무리됐다. 김정섭 기획조정실장 등 국방부 관계자와 장병 가족 800여 명이 함께한 자리이기에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의 의미가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앙코르곡으로 조국을 구하는 보훈의 의미가 담긴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이 경쾌하게 연주됐다. 연주회의 대미는 한경필의 생동하는 연주에 맞춰 관객이 모두 일어나 한목소리로 부르는 애국가가 장식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