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칼럼] 제로페이는 착하지 않다
사람들은 왜 제로페이를 쓰지 않을까. 서울시가 작년 말 내놓은 간편결제 서비스인 제로페이 이용률이 제로(0)에 가깝다고 한다. 올 1월 결제실적은 8633건, 금액으론 2억원이 채 안 됐다. 같은 달 국내 개인카드(신용·체크·선불) 결제의 각각 0.0006%와 0.0003%에 불과했다.

박원순 시장이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없애주고, 이용자에겐 소득공제혜택을 더 주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한 서비스치고는 초라한 결과다. 소상공인도 돕고, 소득공제도 더 받는다는 이 ‘착한 페이’를 왜 아무도 이용하지 않을까. 이유가 궁금해서 직접 써봤다.

먼저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거래은행 앱에 접속해 제로페이 서비스에 가입했다. 하지만 제로페이 가맹점을 찾기부터 쉽지 않았다. 서울에만 9만 곳이 넘는다지만, 전체 업소의 15% 정도인 데다 시범구역 등에 몰려 있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어렵사리 발견한 가맹점에서 커피를 주문한 뒤 거래은행 앱을 구동해 ‘제로페이’ 메뉴를 눌렀다. 본인 확인을 위해 공인인증서 로그인이 필요했다. 특수문자가 포함된 10자리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QR코드 촬영화면이 나왔다. 이걸로 매장에 붙어있는 QR코드를 찍어야 한다. 이어 주문한 커피값 3500원도 직접 스마트폰에 입력하고 ‘확인’을 눌러야 했다. 매장직원이 따로 가맹점주용 제로페이 앱에 접속해 입금을 확인한 뒤에야 결제가 끝났다.

카드사에 수수료를 주지 않기 위해 소비자가 가게 주인 계좌에 결제액을 직접 송금하는 방식이다 보니 절차가 복잡했다. 신용카드를 긁거나 POS리더기에 스마트폰을 대기만 하면 결제되는 기존 방식에 익숙한 기자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결제 시간도 기존 방식보다 3~4배 더 걸렸다. 이용실적이 제로인 이유가 이해됐다.

서울시는 제로페이를 왜 이렇게밖에 못 만들었을까. 관제(官製)서비스의 필연적 한계란 생각부터 들었다. 민간 기업이었다면 이런 불편한 서비스는 시장에 내놓을 엄두를 못 냈을 거다. 만약 출시했더라도 ‘불편하다’는 시장 반응이 나오면 즉시 서비스를 중단하고 다시 상품을 설계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제로페이의 홍보에만 더 열을 올릴 기세다. 이미 제로페이 시스템 구축과 홍보에 작년에만 30억원을 썼다. 올해는 40억원을 더 쓴다. 의기투합한 중소벤처기업부도 제로페이 확대를 위해 지난해 30억원에 이어 올해 60억원의 예산을 잡아놨다.

제로페이는 세금 낭비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다. 이런 관제 서비스는 시장을 교란하고 민간 혁신의 싹을 짓밟는다. 정부가 세금으로 결제서비스를 만들어 민간과 경쟁하겠다는 것 자체가 불공정 게임이다. 이런 게임에서 어느 민간 기업이 자기 돈을 날릴 위험을 무릅쓰고 핀테크 등 혁신 서비스에 투자하려고 하겠는가.

결제도 서비스 상품이다. 시장에선 이런 페이, 저런 페이 등 다양한 결제 서비스가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비자 선택을 받은 승자는 살아남고, 패자는 도태된다. 그런 피말리는 경쟁이 기술혁신을 유발하고, 서비스 질을 높인다. 이게 정글 같지만 시장이 옹호받는 이유다.

여기에 약자 보호라는 선의(善意)를 내세워 정부가 뛰어들면 시장은 망가진다. 관제 서비스야말로 어항 속 생존경쟁을 촉진하는 메기가 아니라 어항 물만 흐리는 미꾸라지다. 미꾸라지가 날뛰면 시장경쟁의 순기능은 사라지고 서비스 질만 떨어진다. 그럼 소비자가 외면해 시장 자체가 쪼그라든다.

결과적으로 보호하려던 약자부터 피해를 본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소상공인과 알바생 등 저소득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제로페이는 착한 페이가 아니다. 불편하고 나쁜 페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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