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방안을 담은 브렉시트 합의안이 12일(현지시간) 영국 의회에서 또다시 부결됐다. 브렉시트 합의안 부결은 지난 1월에 이어 두 번째다. EU와 재협상을 통해 마련한 수정안이었지만 의회 벽에 막히면서 오는 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영국 의회는 아예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 브렉시트’ 방안을 놓고 13일 다시 표결에 들어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노 딜 브렉시트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며 “우리는 (EU를 떠날) 좋은 합의안을 이미 갖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도 부결되면 하원은 14일 브렉시트 일정 자체를 연기하는 방안을 투표한다. 현재로선 29일 예정된 브렉시트는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英의회 '수정 합의안'도 퇴짜…브렉시트 일정 늦춰질 가능성
영국 하원은 2차 브렉시트 승인투표에서 찬성 242표, 반대 391표로 메이 총리가 EU와 마련한 새 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전날 영국과 EU는 브렉시트 합의안의 최대 쟁점이었던 안전장치(백스톱)에 대한 보완책을 내놨지만 소용없었다. 제프리 콕스 영국 법무장관이 “영국이 EU 동의 없이 안전장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 없다”는 법률 검토를 내놓은 뒤 ‘부결’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안전장치는 영국이 EU를 나간 후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 아일랜드 사이에 엄격한 국경 통제를 피하기 위해 영국이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임시방편이다. 브렉시트 합의안에 잔류 시한을 명시하지 않아 영국이 경제적으로 EU에 기약 없이 종속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질서 있는 브렉시트로 갈 수 있는 합의안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영국 의회는 13일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 브렉시트 안을 두고 표결에 들어갔다.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정치·경제적으로 대혼란이 올 것이란 우려가 많아 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방안도 거부되면 14일 브렉시트 시점을 연기하는 안을 놓고 투표한다.

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일정을 미루는 방안이 통과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이 경우 혼란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리스본조약 50조에 명시된 브렉시트 시점을 바꾸려면 EU 27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한다.

회원국들의 동의를 받아내도 기간을 두고 의견을 맞춰야 한다. 5월 말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를 고려하면 짧게는 4~7월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영국 정치권에서 조기총선, 제2 국민투표 등을 노리며 1~2년 장기간 연기를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브렉시트 시점을 연기해도 현재 상황을 반전시킬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EU 측은 더 이상 추가 협상이 없다고 못박았다.

결국 노 딜 브렉시트에 대한 공포로 영국 의회가 합의안을 다시 투표에 부쳐 승인하거나 아예 다른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합의안을 폐기한 뒤 나올 수 있는 시나리오는 조기 총선, 정부 불신임 투표, 제2 국민투표 등이다. 메이 정부를 퇴진시키거나 브렉시트 자체를 없던 일로 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올해 영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2%로 하향 조정했다. EU와 합의하에 브렉시트하는 것을 전제로 집계한 수치다. 브렉시트 불확실성과 글로벌 경기 둔화 등이 성장률 하향 원인으로 지목됐다.

런던=정인설 특파원/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