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억원짜리 ISD, 30년 토지보상제도 근간 흔드나
지난해 9월 미국 동포 서모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첫 ‘공시지가 토지 수용’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사건을 맡을 국제 중재판정부가 구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배상 규모가 33억원으로 비교적 소액이지만 정부가 패소할 경우 30여 년간 이어져온 토지 보상 제도에 일대 변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르면 연내 확정될 소송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제중재판정부 구성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로 구성된 정부 분쟁대응단과 소송 당사자인 서씨는 이달 초 중재인 한 명씩과 의장중재인 등 세 명의 중재판정부 구성을 마쳤다. ISD는 양 당사자가 중재인 한 명씩을 선임하고 당사자들 합의로 의장 중재인 한 명을 임명해 판정부를 구성한다. 중재지로 한국을, 중재기관으로 홍콩국제중재센터를 선정했다.

서씨는 중재인으로 홍콩 법률회사 데뵈(Des Voeux)의 베니 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정부 측 중재인은 도널드 맥레이 캐나다 오타와대 법학부 명예교수가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재판정부의 재판장 역할을 하는 의장중재인은 브루노 지마 미국 미시간대 법대 교수가 내정됐다. 그는 국제사법재판소(ICJ) 판사로도 활동했다. 서씨와 정부 측에서 쟁점만 추려 ‘신속절차’로 진행할 경우 2~3년 이상 걸리는 일반 ISD와 달리 연내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공정시장가격’≠‘공시가격’ 논란

사건의 발단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씨는 2001년 서울 마포에서 주택 및 토지 188㎡를 3억3000만원에 사들였다. 2012년 마포구는 그해 서씨 보유 토지가 포함된 대흥2구역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이듬해인 2013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서씨는 2016년 서울시지방토지수용위원회, 2017년 중앙토지수용위원회 등을 거쳐 제안된 9억5000만원(약 85만달러)가량의 수용가에 대해 “시장가격에 미치지 못한다”며 수령을 거부했다. 당시 일반 분양된 신규 주택의 분양가는 전용면적 85㎡ 기준 7억원 안팎이었다. 서씨가 퇴거를 거부하자 지역 재건축조합은 소송을 걸었고, 2017년 1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서씨는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을 근거로 시장가격으로 보상하지 않는 국내 토지보상 체계에 문제가 있다며 작년 9월 ISD 의향서를 제출했다. 소송 가액은 당시 공시가격과 실거래가 간 차액 및 정신적 피해보상을 포함한 33억원 규모다. 한·미 FTA 11조에는 각종 보상에 대해 ‘공정시장가격’을 기준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토지보상금은 직전 발표된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반으로 이용상황, 토지형상, 감정평가 등을 고려해 결정된다.

서씨, 재개발 지정 후 귀화…자격 논란도

론스타, 엘리엇매니지먼트 등으로부터 이미 6조원대 ISD를 제기당한 정부가 30억원대 ISD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패소에 따른 파장 때문이다. 만약 패소하면 한국에서 토지를 수용당했던 동포와 외국인들이 일제히 비슷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보상 규모만 수십조원에 달할 것이란 추산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연간 토지보상 규모는 10조~20조원이고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토지는 여의도의 약 84배 규모인 239㎢로 감정가만 30조2000억원에 달한다.

국토부는 ‘외국인 투자활성화에 따른 토지수용 및 보상제도 정비 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해 오는 3월까지 받기로 했다. 한 국제중재 전문가는 “공시지가 중심 수용제도에 대해 국제법적 평가를 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공시지가에 실제 가격이 충분히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시지가가 차츰 현실화되는 추세인 데다 시장가격 역시 호가 위주의 ‘의미 없는’ 가격도 있다”며 “현 제도가 한·미 FTA에 크게 배치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서씨가 토지를 매입하고 재개발 절차가 논의된 시점에는 국적이 한국인이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현재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ISD 소송 자격을 얻는다면 이를 악용할 이민자가 많을 것이라는 게 정부 측 우려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