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신엄항은 유서 깊은 어촌 항구다. 조선시대인 1702년 제주목사였던 이형상이 그린 화첩 ‘탐라순력도’에 나올 정도다. 하지만 고령화로 어가(漁家)인구가 급감하면서 이곳은 등록된 어선이 한 척도 없는 ‘유령 항구’가 됐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나이 든 어민들이 은퇴하는 데다 선원 구인난까지 심해지면서 마을마다 어선이 사라지고 있다”며 “이 같은 유령 항구가 제주도에만 6곳이고, 등록된 어선이 5척 이하인 항구도 13곳에 이른다”고 전했다.
이러다간…'수산업의 종말'
고령화로 국내 수산업 전멸 위기

급속한 고령화로 수산업이 위기에 처했다. 주무부처 수장인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수산업의 종말’이라는 말을 했을 정도다. 김 장관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고령화 등으로 어촌인구가 급감하면서 위기에 처한 수산업을 되살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며 이 같은 표현을 썼다.

통계청과 해수부에 따르면 지난해 어가인구는 12만1734명으로 집계됐다. 4년 전인 2013년 14만7730명에서 10% 넘게 감소했다. 반면 60세 이상 고령 어가인구는 계속 증가해 지난해 전체의 49%(6만160명)에 달했다. 70세 이상 인구 비율도 22%(2만6436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수부는 고령화 추세가 점점 빨라져 2020년 어가인구가 10만 명 선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어촌 인구는 줄어드는데 수산물 소비량은 늘면서 수산물 수입량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수산물 수입액은 10년 전(296억달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514억달러에 달했다. 한국인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 8월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NSC)가 7월 발표한 ‘수산물 소비연구2017’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연간 58.4㎏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농어촌 사회 갈등도 심화

귀농 인구로 고령화 충격을 그나마 완화하고 있는 농촌과 달리 도시민이 어촌으로 이주하는 귀어 인구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귀농에 비해 인적·물적 진입장벽이 높고 태풍 등 자연재해 우려도 커서다. 어선·양식업 등을 하기 위해선 기술 습득은 물론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거나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어업면허를 구입하려고 해도 5000만~1억원 정도가 든다. 작은 어선(3t)도 구입 비용이 1억원에 달한다. 양식업은 어선업보다 초기 투자 비용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귀어인과 주민 사이의 갈등도 빈번하다. 본격적인 어업을 하기 위해서는 수협 조합원 자격을 갖춘 계원을 중심으로 조직된 지역 어촌계에 가입하는 것이 필수다. 하지만 이들 어촌계는 단순 지역공동체가 아니라 마을 공동어장을 함께 운영해 수익을 배분하는 경제조직이라 가입 조건이 까다롭다. 경남의 한 어촌계장 박모씨(63)는 “계원으로 같이 일하려면 마을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적응을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도시에선 청년-노인 간에 일어나는 세대 갈등이 농어촌에선 60~70대 노인과 80~90대 노인 사이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80세 이상 노인을 위한 경로당이 따로 생기기도 한다. 충남 보은군은 80세 이상만 출입할 수 있는 ‘상수사랑방’을 설치했다. 충남 태안군에도 나이에 따라 출입하는 경로당을 구분해 설치해달라는 건의가 들어왔다.

젊은 사람이 농어촌에 들어오지 않으니 ‘60대 청년회장’ ‘70대 마을이장’이 흔한 일이 된 지 오래다. 40대에 처음 이장직을 맡았다가 후임자가 없어 30년째 이장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전남 곡성군 겸면의 이재산 씨(60)는 “젊은 사람들이 와서 사업도 벌이고 면사무소랑 싸우기도 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성수영/고은이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