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연내 본회의 처리 합의
독점 사용권 2년으로 늘리고 고의 과실 없으면 배상책임 면제
당초 발의案보다 규제 더 풀어
행정규제 기본법도 처리키로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 본궤도 오르나
규제혁신 5법 모두 통과 유력
전문가 "규제완화 속도가 중요"
1년 만에 틀 갖춘 혁신성장
국회 정무위원회는 28일 전체회의를 열어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정무위원장)이 발의한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을 의결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법안의 핵심은 금융회사가 신사업을 테스트하는 경우 기존 금융 규제를 면제해주는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혁신 금융서비스 사업자로 선정하면 시범운영 기간인 최대 4년 동안 인허가 등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규제 샌드박스란 어린이가 모래판에서 마음껏 놀 듯 금융회사가 제한된 공간 안에서 규제에 구애받지 않고 신사업을 시도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여야는 서비스 출시 후 독점적 사용권(배타적 운영권) 기간을 대폭 늘렸다. 당초 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1년 동안 다른 사업자가 동일한 서비스를 출시할 수 없도록 했지만 논의 과정에서 2년으로 늘었다.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기업에 배상 책임을 지우는 조항도 삭제됐다. 고의 과실이 없다는 것을 금융사가 입증하면 별도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무위 관계자는 “금융사가 혁신적 서비스를 마음껏 시도하도록 보장하자는 취지”라며 “무과실 책임은 제조물책임법에 들어 있어 넣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규제개혁 법안인 행정규제 기본법 개정안도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연내 처리에 합의하면서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법안은 신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나 제품에 대해 ‘우선 허용·사후 규제’ 원칙을 적용하도록 했다. 기존 규제가 신사업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네거티브 규제를 우선 적용하기로 하면서 소위 ‘규제 샌드박스 5법’의 입법 절차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지난 26일 민 의원의 개정안과 김종석 한국당 의원의 개정안을 병합해 의결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다만 정의당이 민주당과 한국당이 합의한 법안의 추가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혀 다시 소위를 열어 합의점을 찾을 예정이다.
규제혁신 5법 내년 시행 예정
규제 완화를 통한 핀테크산업 활성화가 수면 위로 오른 건 박근혜 정부 때다. 박 전 대통령이 2014년 3월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공인인증서를 요구하는 불편한 결제 방식 탓에 중국에서 ‘천송이 코트’를 구매하지 못한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천송이 코트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배우 전지현이 입은 트렌치코트로 중국인들의 구매 수요가 많았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 후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을 폐지한 법안이 논란 끝에 시행됐지만 다른 규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 정부 들어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은 신산업·신기술에 대한 규제혁신이 필수다. 민간의 상상력이 낡은 규제와 관행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며 독려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익단체와 시민단체의 반발에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탓이다.
규제 장벽에 가로막히자 스타 핀테크 기업도 나오지 않았다. KPMG인터내셔널이 뽑은 ‘2018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에 오른 한국 기업은 고작 2곳이었다. 안남기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정보기술(IT) 강국임에도 한국엔 규제가 지나치게 많다”며 “아이디어가 있어도 촘촘한 규제를 어떻게 하면 피할까 궁리하다 회사가 끝난다”고 지적했다.
세계 100대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세워졌다면 13개 기업은 규제로 인해 사업 자체를 시작할 수 없고, 44곳은 조건부로만 사업이 가능했다는 게 핀테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행히 이번 정기국회에서 금융혁신지원 특별법과 행정규제 기본법 개정안 통과가 유력해지면서 규제혁신 5법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질 전망이다. 5법 가운데 정보통신융합법·산업융합촉진법·지역특구법 등 3개 법안은 지난 9월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 법안들은 이르면 내년 1월, 늦어도 상반기에는 시행될 예정이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