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현재 75% 수준인 원자력발전 의존율을 2025년까지 50%로 낮추겠다는 전 정부 방침을 10년 미루겠다고 27일 공식 발표했다. 대만이 지난 25일 국민투표를 통해 탈(脫)원전 정책을 폐기하기로 한 데 이어 프랑스마저 원전 축소 방침에서 후퇴하면서 탈원전 속도를 늦추려는 세계적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각료회의에서 “원전 의존율을 2035년까지 50%로 낮추겠다”며 “새 로드맵에 따라 가동 중인 58기 원자로 중 14기를 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脫원전' 속도조절…감축 시간표 10년 늦춘다
앞서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원전 의존율을 2025년까지 50% 수준으로 줄인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이후 급격한 원전 비중 축소가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이유로 전 정부가 제시한 기한보다 10년 연기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로이터통신은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가장 노후한 페센하임 원자로 2기를 제외하고는 어떤 원전도 폐쇄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원자력 에너지의 역할을 줄인다고 해서 원전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자력 발전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을 것”이라며 “국영 에너지기업을 통해 차세대 원자로 상용화 가능성 연구도 시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원전이 여전히 효율적인 전력 생산 방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프랑스는 원전 의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힌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은 전력 공급 안정성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친환경 에너지 확대 정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대기오염 주범으로 지목되는 석탄 화력발전소 4곳은 2022년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대신 2030년까지 풍력 발전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을 3배 늘리고, 태양광발전도 현재 수준보다 5배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이번 발표는 프랑스 정부가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유류세를 인상하자 전역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들의 항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제 유가 추이에 따라 디젤과 가솔린에 붙는 유류세 인상 폭과 시점을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 1년간 경유(디젤) 유류세를 23%, 가솔린 유류세는 15% 인상했지만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자 한 발 물러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