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의 수주전이 보여주듯이 탈원전 정책이 원전 수출에 직·간접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장 국내 원전 생태계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신규 원전 건설 중단으로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 등 공기업은 적자 위기로, 두산중공업과 부품업체 등 민간 기업은 고사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인력이 빠져나가는 가운데 연구기반까지 붕괴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는 “탈원전은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어서 원전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과 상충하지 않는다”는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의 자가당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모범 사례’로 제시했던 대만의 탈원전 정책이 국민투표에서 제동이 걸리자 “대만 사례는 우리와 다르다”는 설명을 내놨다. 탈원전의 경제적 악영향으로 따지면 원전을 수입하는 대만보다 원전을 수출하는 한국이 훨씬 크다.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서라도 탈원전을 재고해야 할 절박성은 우리나라가 훨씬 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참다못한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 협의회’, 한국원자력학회 등이 “(우리) 정부도 탈원전 기조에 대해 국민 의사를 물어달라”는 성명서를 냈지만,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민이 납득할 이유 제시도 없이 조사에 나설 생각이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탈원전 정책이 국민투표까지 고려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피해갔다. 탈원전 피해가 얼마나 더 심각해져야 정부 여당은 국민 뜻을 묻겠다고 나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