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두뇌 역조' 에 무관심한 한국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3년 연두교서에서 ‘두뇌 유치’를 이민 정책의 목표로 내세웠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첨단기술 분야의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중국과 전면전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앙숙 관계로, 이민 정책은 다르지만 미국의 브레인 파워를 키운다는 데에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실리콘밸리 기업의 절반 이상은 이민 온 외국 두뇌가 창업했다. 미국의 국제특허도 4분의 1은 귀화한 이민자 몫이다. 외국 두뇌 유입 효과는 미국에서 태어난 고졸 이상 시민 90% 이상이 임금 인상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으로의 두뇌 유출 탓에 국력이 쇠약해진 영국 등 유럽은 두뇌 유지와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은 미국마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두뇌 확보에 공세적이다. 고급 인재 유치 프로젝트를 국가 과제로 공식화하고, 슈퍼 인재 1000명을 유치하는 ‘천인(千人)계획’을 도입한 데 이어 국적과 전공을 확대하면서 ‘만인(萬人)계획’으로 격상했다. 영주권은 물론 어떤 나라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자금을 제공하고 정부 간섭 없이 이 자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 중국의 이런 두뇌 확보 정책으로 인해 대만의 첨단산업은 피폐해졌다. 대만 정부는 뒤늦게 알고 후회하지만 소용이 없다. 중국은 한국 인재에도 눈독을 들여왔다. 이 때문에 한국도 핵심 산업이 두뇌 유출의 부메랑으로 흔들리고 있다.

세계는 두뇌 확보 전쟁 중이다. 그러나 한국은 두뇌 유출 국가로 전락했고 문제의 심각성도 인식하지 못하는 나라가 됐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두뇌유출지수’를 보면 경악할 정도다. 한국의 두뇌 유출은 1996년 37개국 중 6위로 1990년대까지는 양호했는데, 그 후 악화돼 2014년 60개국 중 37위, 2016년 61개국 중 46위, 2017년 63개국 중 54위로 뚝뚝 떨어져 두뇌 유출이 심각하기로 유명한 남미 국가, 러시아(52위), 루마니아(55위), 그리스(57위)와 비슷해졌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최하위인 베네수엘라(62위), 헝가리(63위) 수준이 될 것이다.

놀랍게도 한국은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비중이 이스라엘을 빼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 투자 성과는 매우 저조하다. 과학기술의 중요성만 인식할 뿐 연구개발(R&D) 환경은 열악하기 때문이다. R&D를 담당할 두뇌를 양성하거나 유치하는 정책은 없으며 과학기술 정책 역시 행정편의 중심이다. 연구자는 연구 성과보다 정부 지침을 지키는 것을 우선시한다. 연구기관 또한 행정 지원 인력에 대한 보상은 잘해주는 반면 연구자에 대한 보상은 열악하다. 과학기술 정책에 만연한 관료주의가 연구자의 사기를 떨어뜨려 한국 유학생은 귀국을 기피하고 외국에서 온 고급 두뇌는 한국을 떠나게 만든다.

관료주의에다 과학을 무시하는 좌파 이념 정치까지 가세해 연구 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탈(脫)원전 정책 탓에 관련 두뇌가 대거 한국을 떠나고 있다. 대학의 원자력학과는 신입생 모집도 힘들 정도가 됐다. 평등주의를 추구하는 좌파 이념은 두뇌 노동에 대한 특별 보상을 어렵게 하고 단순 노동이 판치게 만들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은 단일호봉제로 연구직이나 행정직 급여를 같은 기준으로 책정한다. 강성 노동조합이 이런 풍토를 만들어온 데다 친(親)노조 정부까지 등장해 한국에서 두뇌가 설 땅은 더욱 좁아졌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게임 등 여러 분야의 한국 두뇌가 중국으로 떠나도 좌파 정치인은 무관심하다.

한국은 이미 심각한 ‘두뇌 역조’ 상태다. 외국에서 오는 전문 인력이라고 해봐야 영어 강사뿐이고 과학기술 분야 비중은 작은 데다 이마저도 줄어들고 있다. 반면 단순 노동인력은 외국에서 물밀듯이 밀려온다.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 천국이라고 할 만큼 급여는 물론 인권 보호가 강화돼 있다. 그러나 단순 노동인력 유입은 중소기업의 청년 고용과 숙련 노동 양성에 장애가 된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단순 노동만 넘치는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만다. 초저출산 사회의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는 길 중 하나도 두뇌 노동을 늘리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 당장 두뇌 유출을 막고 두뇌 유치와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