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간 비핵화, 대북 제재 등을 논의할 워킹그룹(실무그룹)이 이달 출범할 예정이다.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는 한·미 양국의 워킹그룹이 출범하는 것은 처음이다. 한·미는 양국 간 긴밀한 조율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미국이 한국 정부의 남북한 경협 속도전에 제동을 걸기 위한 장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미 국무부는 30일(현지시간)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긴밀한 조율을 더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워킹그룹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킹그룹은 외교와 비핵화 노력, 제재 이행 그리고 유엔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 간 협력사업에 대한 조율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31일 정례 브리핑에서 워킹그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한·미 사이에 더욱 긴밀한 논의를 위한 기구로 안다”며 “비건 대표 개인을 넘어 좀 더 체계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워킹그룹 설치는 비건 대표가 지난 29~30일 방한했을 때 우리 정부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그룹을 이끌 양측 대표는 비건 대표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맡기로 했다. 미 국무부와 한국 외교부 중심으로 운영하되 관계 부처 관계자도 참여할 예정이다.

워킹그룹은 북한 비핵화, 대북 제재 이행, 남북 협력 등 현안을 다룰 계획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간 논의를 정례화, 공식화, 체계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워킹그룹 역할에 대해선 “정상들이 먼저 합의한 뒤 실무자들이 세부 협상을 하는 톱다운 방식을 보조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 측이 워킹그룹 설치를 먼저 제안했고, 미국 측과 지난 몇 달간 논의해왔다”며 대북 압박을 위해 새롭게 워킹그룹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워킹그룹에 대해 미국이 남북 간 협력 과속을 막기 위해 실질적인 제동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건 대표는 이번 방한에서 카운터파트인 외교부 당국자는 물론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잇따라 만났다. 또 남북한 정상회담 실무 책임자인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까지 만나는 등 청와대와 국정원 외교안보라인의 주요 인사를 모두 만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전문가들도 비건 대표의 일정을 감안할 때 워킹그룹은 남북 협력사업의 진행 속도를 북한 비핵화 속도와 맞출 수 있도록 한·미가 실무적으로 조정해나가기 위한 기구로 분석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그동안 한·미가 대북 제재 문제로 계속 이견을 보여왔다”며 “미국은 아예 상설 기구를 두고 남북 경협 문제를 직접 논의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미 한·미 간 대북 문제에 의견 차가 크기 때문에 실무기구 차원에서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채연/박재원 기자/워싱턴=주용석 특파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