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진 "스타트업 창업자에 차등의결권 절실…상속·증여 땐 보통株로 바꾸면 돼"
“음, 글쎄요…. 아닌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한 젊은 친구들 사이에선 창업 열기가 이전보다 식었습니다. 성공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규제에 시달리다 고꾸라지는 사례를 더 많이 봤으니까요.”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김봉진 의장(42·사진). 16일 서울 소공로에서 열린 포럼 출범 2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그는 ‘창업 환경이 2년 전보다 좋아졌느냐’고 묻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잔칫날’ 분위기에 맞춰 의례적으로 던진 질문에 돌아온 의외의 답변이었다.

김 의장은 “스타트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의지가 커진 건 확실하다”면서도 “현실에서 개별 기업이 맞닥뜨리는 규제의 ‘디테일’은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이 해외 스타트업 인수를 늘리는 추세에 대해서도 “돈의 흐름이라는 건 솔직한 법”이라며 “지금 한국에 투자하기 힘드니 나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스타트업이 뭉쳐 규제 혁파에 한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로 2016년 출범한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2년 새 525개 회원사를 둔 단체로 성장했다. 김 의장이 창업한 배달의민족을 비롯해 토스, 직방, 마켓컬리, 여기어때, 쏘카, 메쉬코리아, 8퍼센트 등 유명 스타트업이 소속돼 있다. 그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잘 돌아간다면 자기 사업하느라 바쁜 기업들이 이렇게 뭉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배달·예약 등 O2O(온·오프라인 연계), 간편송금·결제 등 핀테크(금융기술), 카풀·차량공유 등 모빌리티(이동수단) 등 주요 산업에서 합리적인 정책 마련이 국가적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타트업 창업자는 경영권 걱정 없이 일하고, 대기업은 보다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환경을 조성해 창업과 투자가 선순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차등의결권’ 도입에 적극 찬성한다고도 했다. 특정 주식에 주당 최대 10표의 의결권을 줘서 창업자 경영권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김 의장은 “스타트업은 외부 투자를 끌어오는 과정에서 창업자 지분율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며 “경영권 방어에 힘을 빼면 혁신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차등의결권이 ‘재벌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진보진영의 반대논리에 대해 김 의장은 “창업자 지분에 한정해 상장 전 주주와 합의를 이뤘을 때만 허용하고, 타인에게 상속·증여하면 보통주(주당 의결권 1표)로 바꿔버리는 등의 견제장치를 마련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미국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과 샤오미의 레이쥔 등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의 창업자들이 차등의결권을 받고 경영에만 전념하는 만큼 한국도 전향적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 의장은 “한국은 제조업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역사 때문인지 IT 기업이 창출한 가치에는 ‘앉아서 돈 번 것’ 식으로 인색하게 평가한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성공한 IT 기업의 창업자가 유망한 후배 스타트업에 전폭적으로 투자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생태계가 대(代)를 이어 번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럼의 향후 활동 방향과 관련해선 “스타트업을 어렵게 하는 규제 문제 대응에 계속 주력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 서면 축사를 보내 “정부는 규제혁신에 속도를 내면서 스타트업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기존 방식을 뛰어넘는 과감한 발상으로, 해석상 허용 가능한 규제는 적극 풀겠다”고 밝혔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