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 제재를 새로 받게 됐거나 받고 있는 터키와 러시아, 이란 금융시장이 줄줄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제재 강도가 높아지거나 장기화할 경우 경제위기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0일 “터키 리라화 가치 하락이 유럽 은행의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美 제재에 루블·리라화 추락… 러시아·터키 "경제전쟁 후퇴 않겠다"
터키 리라화는 이날 달러당 환율이 전일 대비 7% 이상 폭등하며 6리라를 돌파했다.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 것으로 사상 최저치가 또 바뀌었다. 올 들어 40% 이상 급락했다. 미국인 목사 구금을 둘러싸고 미국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터키가 전날까지 벌인 협상에서 별다른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 여파가 그대로 반영됐다.

터키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9일 연 19%까지 치솟으며(채권 가격 하락) 장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스탄불증시의 BIST100지수도 올초 대비 15% 가까이 하락했다. 터키 재무부는 미국의 제재 조치 이후 금융시장 혼란이 이어지자 당초 9월 공개할 예정이던 ‘3개년 경제계획모델’을 앞당겨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전망이 많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리라화를 방어하기 위해 터키 정부가 쓸 수 있는 옵션은 금리 인상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미국 정부와의 협상 타결, 자본 통제 정도”라며 “하지만 어느 하나도 쉽게 취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분석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저금리를 선호한다고 밝히며 중앙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데다 미국과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시장에선 IMF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만 이 경우 터키 정부가 긴축 통화·재정정책을 감수해야 한다.

리라화가 급락하면서 터키 채권이 많은 유럽계 대형 은행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 영향으로 유로·달러 환율은 지난해 7월 이후 13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ECB 산하 은행감독기구(SSM)는 “터키 대출이 많은 스페인 BBVA, 이탈리아 유니크레디트, 프랑스 BNP파리바 등의 은행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러시아는 영국에서 전직 이중간첩을 신경작용제로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미국의 추가 제재를 받고 있다. 달러당 루블 환율은 67루블을 넘어서며 2016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러시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10일 연 8.2%로 뛰어올라 지난해 3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란도 지난 7일 미국의 제재가 복원되면서 달러 대비 리알화 통화 가치가 연일 떨어지고 있다. 물가 상승에 대비한 금 사재기까지 벌어지고 있다. 비공식 시장에서 거래되는 리알화 가치는 미국이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선언한 5월 대비 반 토막 났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