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일본의 조선 女도공
‘일본 도자기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여성 도공 백파선(百婆仙·1560~1656). 경남 김해 출신인 그녀는 정유재란 때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간 뒤 최고 명품 ‘아리타 도자기’를 만든 주역이다. 일본 백자의 도조(陶祖)로 추앙받는 이삼평, 심당길(심수관 가문)과 동시대에 활약했지만 오랫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가 조명을 받게 된 것은 2016년 ‘일본 자기 탄생·아리타 자기 창업 400년’ 행사를 앞두고 아리타의 사찰 호온지(報恩寺)에서 탑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손자가 세운 탑에는 그녀가 96세까지 살았고 뛰어난 지도력으로 조선 도공들을 이끌며 백자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초기에 아리타 인근 다케오시에서 도자기를 빚던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뜨자 960여 명의 도공과 함께 아리타로 이주해 직접 가마소를 운영했다. 조선 사회는 여성의 가마소 출입을 금했으나 그녀는 도공인 남편 덕분에 기술을 익혀 대규모 기술진을 이끌 수 있었다. 그녀는 조선 최초의 여성 사기장(沙器匠)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도자기의 인기는 대단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미천한 출신을 감추고 다이묘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다도(茶道)를 활용했다. 고아하고 격조 높은 조선 찻사발을 특히 좋아했다. 다이묘들이 앞다퉈 도공을 끌고 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무렵 백자를 만드는 기술은 중국과 조선밖에 없었다. 일본인은 비법을 캐기 위해 끊임없이 주위를 맴돌며 염탐했다. 조선 자기는 그만큼 수준 높은 ‘하이테크산업’이었다. 조선 도공의 후예들이 만든 일본 도자기 덕분에 중국과 조선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80%나 줄었으니 이들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일본 도자기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됐다. 이는 독일의 마이센, 프랑스 리모주, 덴마크 로열코펜하겐 등 세계적인 도자기의 밑거름이 됐다. 이 과정에서 쌓인 부는 메이지 유신과 일본 근대화의 종잣돈이 됐다.

일본은 도자기 가치를 일찍 깨닫고 해외 인력을 빼앗아 기술력을 높인 뒤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10세기에 이미 최고 수준의 도자기 기술을 갖고도 상업화에 실패한 우리와 대조적이다. 독보적인 상감청자 기술을 확보한 인력이 5명도 채 남지 않은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백파선의 드라마틱한 삶은 일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용비어천가》와 여러 편의 뮤지컬로 소개됐다. 2016년에는 아리타에 백파선 갤러리가 생겼다. 고향인 김해시와 문화 교류도 늘고 있다. 오는 29일에는 아리타 도자기 축제에서 백파선 기념상 제막식이 열린다. 400여 년 전 우리 도자 기술로 일본과 세계를 휩쓴 조선의 예술혼을 다시 새겨 볼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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