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헌혈, 생명을 나누는 고귀한 실천
지난 2월21일, 백발의 노신사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헌혈의집을 찾았다. 헌혈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그는 올해 70세의 김의용 씨. 헌혈은 법적으로 만 69세까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1948년 2월28일생인 그에게 이날은 생애 마지막 헌혈이었다. 1980년 헌혈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468회의 헌혈을 했음에도 ‘마지막’임을 아쉬워하는 김씨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인공적으로 만들거나 대체할 수 없는 것이 혈액이다. 또 헌혈은 수혈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인간 생명 존중의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고귀한 행동이다.

어려웠던 사회 형편상 헌혈을 기대할 수 없었던 1970년대 중반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공혈자를 확보하기 위한 매혈(買血)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이에 혈액 사업을 주관했던 대한적십자사는 1974년 매혈을 일체 중단하고 1978년 ‘1도 1혈액원’ 설치, 시설과 장비 보강, 헌혈의 숭고함을 알리는 홍보 활동 등으로 헌혈 문화 정착에 앞장섰다. 모든 헌혈자에게 HIV 항체검사·C형 간염 항체검사를 하는 등 안전한 혈액을 위한 시스템도 갖춰나갔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의 헌혈 인구는 300만 명 안팎으로 전체 인구의 5.6%에 이른다. 영국의 국민 헌혈률이 3.1%인 점을 고려하면 선진국의 헌혈 양보다 앞서는 수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선진국에선 헌혈 인구가 꾸준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젊은 세대의 헌혈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이에 필자는 대한적십자사 회장 취임 후 교육부 장관과 만나 “독일, 폴란드, 영국처럼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헌혈의 고귀함과 헌혈자의 건강에 대한 정보를 실어 우리 사회가 공유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적십자사를 창설한 앙리 뒤낭의 정신, 곧 인도주의를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헌혈 문화를 자연스럽게 정착시키기 위함이다. 특히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가 헌혈 인구 감소로 이어지는 오늘날, 젊은 세대를 포함한 중·장년층의 꾸준한 헌혈 참여가 절실하다.

김씨는 이제 헌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헌혈은 ‘69세 이하의 건강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이제 38년간 그가 누린 특권이자 고귀한 나눔의 정신을 우리 사회가 이어나가길 바란다. 함께 건강하자는 약속, 헌혈을 생활화할 때 우리는 더불어 사는 따뜻한 공동체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