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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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서울대 법과대학 대학원에 적을 둔 28세 ‘고시생’ 성낙인은 실의에 빠졌다. 당시 엘리트의 상징인 경기고·서울법대 출신에게 낙방이라는 실패는 낮설고 쓰디쓴 경험이었다. 좋지 못한 건강 탓도 있었지만 암기한 내용으로 제한시간 안에 답안지를 채워 내는 고시는 낙천적인 자유인이자 탐구심이 왕성한 그와 궁합이 맞지 않았다.

마냥 놀 수 없어 유학을 준비했다. 당시 대세였던 독일 법학 서적을 펴들었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독일어에 공을 들였건만 독일 법전은 ‘까만 건 글자요, 흰 건 종이’로 막막하게 다가왔다. 안 되겠다 싶어 프랑스어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파리가 ‘세계 지식인의 로망’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1983년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 오늘의 성낙인 서울대 총장(67)을 있게 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고시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히 ‘새 길’ 개척

오는 7월 4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성 총장은 서울대를 이끄는 수장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헌법학자’로 손꼽힌다. 남부러울 게 없을 듯한 그의 인생에도 아픔은 많았다. 20년 넘은 그의 단골 식당이 서민의 애환이 묻어나는 설렁탕집인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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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건강이 받쳐주지 못했다. 책상 앞에 진득하게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로 병약했다. 성 총장은 “젊은 시절부터 나빴던 건강 탓에 ‘이래선 죽겠구나’ 싶어 40대부터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매일 새벽 헬스와 목욕을 마친 뒤 꼭 이 집에 들러 설렁탕 한 그릇을 먹고 출근했다”는 설명이다. 건강 회복은 인생의 힘든 고비를 넘는 것과도 묘하게 겹쳤다고 한다.

고시를 포기하고 떠밀리듯 간 프랑스 유학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세에 휩쓸리기보다 소질과 적성을 선택한 것이 맞아떨어졌다. 성 총장은 “프랑스는 우리나라 장·차관에 해당하는 자리가 6~7종에 달한다”며 “이처럼 독특한 각료 제도에 흥미를 느껴 파고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성 총장이 1987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상 각료제도’는 당시 아시아권 학자로는 최초로 프랑스 《정치헌법학전서》에 실렸다. 이후 성 총장이 집필한 《프랑스 헌법학》은 우리나라 현지 주재원과 유학생들에게 인기를 얻어 ‘스테디셀러’에 올랐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프랑스가 잘 맞았다. 성 총장은 “유학 시절 친구를 만나러 독일에 간 적이 있는데 오후 5시만 넘어도 적막강산이라 답답함이 밀려오더라”며 “공부가 힘들면 밤 10시에도 도심 카페에서 한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회상했다.

잇단 ‘삼수’…포기 않고 밀어붙이자 해피엔딩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수육이 나왔다. 은근한 육향과 쫄깃한 육질이 입에 감겼다. 직접 담근 김치와 깍두기가 상큼한 맛을 더했다. 성 총장은 수육을 몇 점 집더니 “수육의 하이라이트는 소 혓바닥”이라고 말했다. “안주가 나왔으니 한 잔 해야지”라며 직접 ‘소맥(맥주에 소주를 탄 폭탄주)’을 말아 권했다.

교수 생활을 시작한 곳은 영남대다. 프랑스 유학 전인 1980년에 임용돼 19년간 영남대 법대 교수로 일했다. 부모를 모시기 위해 고향과 가까운 학교를 선택했지만 지방에만 있다 보니 큰물에서 연구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져 갔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 실적을 쌓은 이유다. 1990년대 중반 무렵 국내 최고의 헌법학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서울대 교수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성 총장은 “헌법을 전공한 기존 서울대 선배 교수들과 나이 차가 많지 않아 자리가 나지 않았다”며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논문 심사, 공개발표, 면접 등에서 계속 1등을 했는데도 무슨 이유인지 임용에서 번번이 탈락했다”고 했다. 그러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지원한 1999년에 마침내 임용돼 모교로 컴백했다.

이미 실력 면에서 자타 공인을 받은 덕분에 임용 8개월 만에 법대 교무부학장이 됐고, 2004년에는 법대 학장에 올랐다. 그는 “사립대 교수를 오래하다 보니 동료 교수들보다 학계를 보는 시야가 넓었던 것 같다”며 “주변에선 승진 속도가 기네스북 감이라고 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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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둥이로 태어나 고초 겪었지만…

서울대 총장 자리에도 힘겹게 올랐다. 2006년과 2010년 선거에서 거푸 고배를 마셨다. 성 총장은 “이수성 전 총리가 ‘다 하늘의 뜻’이라며 마음을 비우라고 하더라”면서 “정작 본인은 할 거 다 해놓고 그런 말을 하니 좀 얄밉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조언대로 마음을 비우고 큰 기대 없이 도전한 2014년 선거에서 덜컥 당선이 됐다. “거봐. 하늘의 뜻이랬지.” 이 전 총리의 당선 축하인사였다.

소맥 몇 순배가 돌았다. 취기가 올라올 즈음 성 총장이 어린 시절 얘기를 꺼냈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성 총장의 별명은 ‘피란둥이’였다. 1950년 6월 터진 6·25전쟁이 한창이던 8월24일 밀양으로 피란 가던 길에 태어나서다. 중산층 집안임에도 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고생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그렇게 몰아서 고생해서인지 전쟁 후 고향 집성촌으로 돌아와서는 비교적 평탄한 유년기를 보냈다. 성 총장이 살던 동네에선 유명인이 많이 나왔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첫째 부인인 성혜림네가 이웃이었다. 성 총장은 “성혜림의 아버지는 창녕에서 손꼽히는 지주로 일제시대 좌익 세력을 몰래 도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소개했다. 국내 1위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로 잘 알려진 영원무역 창업주인 성기학 회장 집도 성 총장의 이웃이었다.

형제자매도 공부를 잘했다. 큰형인 성낙승 전 금강대 총장은 고려대 법대를 나와 문화공보부 차관보를 거쳐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불교방송 사장 등을 지냈다. 7남매가 모두 학계나 공직에서 고위직에 오르면서 고향에서는 자식농사 잘 지은 집으로 소문이 났다. ‘아무리 곧은 이야기라도 남에게 하면 좋아할 사람이 없다’며 배려를 강조한 선친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됐다는 게 성 총장의 회고다. 그는 또 “성기학 회장의 형제자매는 모두 기업인”이라며 “집안마다 내력이란 게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서울대생, 신림동인이 아니라 세계인 꿈꿔야”

고기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설렁탕이 나왔다. 설렁탕 반 그릇을 비운 성 총장이 지난 4년을 돌이켜봤다. 가장 보람을 느낀 사업으로 그는 ‘선한인재장학금’을 꼽았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에 속한 학생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등록금 전액과 함께 월 3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지금까지 850명의 학생이 혜택을 받았다.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10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 ‘천원의 식사’도 좋은 평가를 받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쉬움도 털어놨다.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했지만 기초학문의 위기 속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시흥캠퍼스 추진에 반발한 학생들이 대학본부를 200일 이상 점거한 것도 가슴 아픈 일로 남았다. 성 총장은 “대학이 100개에 가까운 학과를 두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며 “백화점 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의 경쟁만 치열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도 학과가 지나치게 분자화돼 시너지가 잘 발휘되지 않는다는 진단이다. 그는 “대학은 큰 오케스트라”라며 “화합이 되지 않고 소모적 경쟁만 지속한다면 거대한 공룡은 결국 도태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에게는 사고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많은 서울대 학생의 시야가 서울 시민도 아닌 신림동민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관악산 자락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고 더 넓은 세상을 꿈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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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인화 이후 첫 총장…"시흥캠퍼스로 4차 산업혁명 대응"

성낙인 서울대 총장의 재임 4년은 다사다난했다. 취임 초에는 영남대 교수를 지냈다는 이력 때문에 친박(친박근혜) 논란이 일었고, 시흥캠퍼스 추진에 반대하는 학생들에 의해 대학본부와 총장실이 점거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특유의 뚝심과 탁월한 친화력으로 지난해 말 시흥캠퍼스 갈등을 해소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 총장은 “지방자치단체 및 기업들과 계약까지 다 마친 상태에서 백지화하자는 학생들의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10년 이상 끌어온 사업인 만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성 총장은 경기 시흥시 배곧신도시 인근에 조성하는 시흥캠퍼스를 4차 산업혁명과 산학협력의 핵심 기지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시흥캠퍼스 전체를 자율주행차 시험이 가능한 테스트베드로 구축하고, 빅데이터를 연구할 데이터사이언스혁신대학원 등을 신설할 예정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을 계승한 통일평화인권대학원도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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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총장의 단골집 삼미옥
설렁탕이 주메뉴…'특제 간장' 곁들인 수육도 인기


1978년 문을 연 삼미옥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8번출구 인근에 자리 잡은 한식당이다. 삼미옥은 ‘세 가지 맛을 가진 집’이란 뜻을 담고 있다. 40년 전 설렁탕, 수육, 도가니탕 등 세 가지 음식을 제공한 데서 유래했다. 2000년부터 황재명 사장이 가업(家業)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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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메뉴는 설렁탕이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을 비롯해 단골들이 자식이나 손주를 데리고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황 사장의 설명이다. 삼미옥만의 ‘특제 간장’으로 고기 본연의 맛을 살린 수육도 인기가 높다. 간장에 우엉과 배를 넣어 만든 특제 간장이 진한 풍미를 고스란히 전달해준다는 평가다.

특설렁탕과 설렁탕이 각각 1만4000원, 9000원이다. 이 밖에 도가니수육(4만원), 도가니탕(1만4000원), 국내산 육우수육(대 4만5000원) 등을 판매하고 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