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혁신성장과 '관치의 추억'
“박근혜 정부는 최악이었다. 1970년대식 발상에서 못 벗어났다. 문재인 정부는 그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1990년대식 발상을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국책연구원 소속 경제전문가는 꽤나 인색한 답변을 내놨다. 그는 “(어떤 산업을 새로 일으키고 어떤 분야에 돈을 투자할지는) 민간이 스스로 골라서 하는 프레임으로 가야 하는데 둘 다 ‘정부가 골라서 지원한다’는 프레임을 못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그의 말처럼 ‘구식’이었다. 창조경제를 하겠다면서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고 주요 대기업에 할당을 줬다. 삼성은 대구·경북, 현대자동차는 광주, SK는 대전·세종, LG는 충북에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육성을 책임지는 식이었다. 처음부터 “정권이 끝나면 없어질 5년짜리 정책”이란 말이 나왔고 그렇게 됐다. 말만 창조경제였지 실제로는 개발연대 정책의 복사판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거칠진 않지만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도 ‘국가 주도’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정부가 핀테크, 드론, 자율주행차, 재생에너지, 초연결지능화,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스마트시티를 8대 핵심 선도사업으로 지정해 집중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나, 2022년까지 매출 1조원 이상 중견기업을 34개에서 80개로 늘리겠다는 정책이 그런 사례라는 것이다. 그는 “될성부른 기술을 가진 기업을 발굴해 돈을 투자하고 그 기업을 상장시켜 돈을 회수하는 일에서는 정부가 이윤 동기를 지닌 민간을 따라갈 수 없는데 자꾸 정부가 개입하려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계획이 원래 의도와 달리 얼마나 황당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박근혜 정부 때 경제관료가 들려준 웃지 못할 일화 하나. “고용률 70%가 국정과제로 정해지자 모든 부처가 달라붙어 연령별·직업별 고용계획을 짰다. 나중에 각 부처가 만들겠다고 한 일자리를 다 더해보니 고용률이 100%를 훌쩍 넘더라.”

예상대로 현실은 딴판이었다.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고용률은 60%대를 맴돌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2년차에 야심 차게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결국은 백화점식 정책의 나열로 귀결됐을 뿐이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지난해 펴낸 대담집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에서 “어떤 새로운 정책도 관료의 손을 거치고 나면 기존과 별반 다를 게 없어지곤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한국 관료는 유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익숙한 일을 처리할 때 얘기고 혁신성장처럼 새로운 일을 해야 할 때는 머뭇거리거나, 관례대로 처리하거나, 심지어 스스로 기득권이 돼버릴 때가 많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에 성공하려면 ‘관치(官治)의 추억’부터 털고 가야 하는 이유다.

물론 정부가 가만히 손 놓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기업과 개인이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그 판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감시하는 역할은 여전히 정부의 몫이다. 한두 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보강하고 기득권이 혁신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규제를 손질하는 것도 정부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 혁신은 혁신성장의 토대”라고 한 건 그런 점에서 맞는 말이다.

주용석 경제부 차장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