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과 정부의 개혁 실패에 불만을 품은 이란 젊은층과 빈민층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계란값 인상을 반대하는 평화집회로 시작한 시위가 전국적인 반(反)정부 시위로 확산되며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최고 종교지도자에게 반감을 표출하는 이슬람 신정체제 반대 시위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 패권경쟁을 벌이며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경제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10년 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자 국제 유가가 치솟았다. 시위 확산과 진압에 따른 상황 악화로 이란이 원유 생산을 중단하는 최악으로 치달으면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종교 지도자도 ‘적’으로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2일(현지시간) 엿새째로 접어들면서 사망자가 2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엔 10대 청소년과 시위를 저지한 경찰도 포함됐다. 시위에 참여한 수백 명이 연행됐다. 외신들은 일부에서 경찰서 습격과 폭동사태가 일어나면서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전하고 있다.

시위대는 이날 처음으로 이란 최고 종교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적’으로 칭했다. 청바지를 입고 분홍색 두건을 맨 젊은 여성은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며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1979년 시아파 종교지도자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혁명으로 이란은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종교지도자가 지침을 주되 실제 행정은 선출된 대통령이 맡는 신정-공화정 체제를 수립했다. 신정 체제에서 최고 종교지도자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였다. 2009년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때도 종교지도자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없었다.
이란, 사우디와 중동 패권 다투다 경제 치명상… 유가 불붙나
하지만 이번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정부의 무능에 환멸을 느낀 젊은층과 빈민층이 목소리를 키우면서 반정부 시위를 넘어, 이슬람 신정체제에 대한 거부로 확산되고 있다. 시위대는 언제, 어디에서 시위에 나설 것인지 스마트폰 메신저 앱(응용프로그램) ‘텔레그램’을 통해 전파하고 있다.

시위대의 정면공격을 받은 하메네이는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이란의 적들이 돈과 무기, 정치, 정보력을 이용해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라는 공식 반응을 냈다. 시위 배후로 영국 미국 등 서방과 중동 내 친미세력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4개 대리전에 망가진 경제

2009년 반정부 시위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부정선거에 항의한 테헤란 중산층의 민주화 요구 성격이 강했다. 이번 시위는 지방 실업자와 빈민층 젊은층의 시위 등 경제적인 이유로 촉발된 측면이 강하다.

시위대는 이란 정부가 중동 대외문제에 과도한 재정지출을 한 것을 집중 비난하고 있다. 국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가운데 정부가 외국에 수십억달러를 쏟아붓는 것에 대해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시위대는 “시리아는 내버려두고 우리를 생각해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지역 패권경쟁 정책을 재고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시리아, 예멘 등은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 역할을 자임하는 이란과 수니파 ‘맏형’인 사우디의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회생시키기 위해 지난해에만 시리아에 10억달러 차관을 제공했다. 이란산 원유를 상당 부분 제공했으며 5000명 이상의 혁명수비대원을 파견했다.

그러는 사이 이란 경제는 망가졌다. 이란 물가상승률은 대선이 있던 지난해 5월(전년 대비 11.8%)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다 11월(전년 대비 9.6%)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5~7월 실업률은 12.6%로 전 분기(12.4%)보다 높았다.

◆신정체제 모순 표출

이번 시위는 신정체제 모순에 대한 불만과 정권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이 표출된 측면도 있다. 공화국 생존이 군사력에 달렸으며 경제적 변화가 체제 변화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보수파와 개방 개혁을 통해 장기 변화를 촉구하는 개혁파의 대결 양상이다.

지난해 5월 민주적 선거로 재선에 성공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신정체제에서 제한된 권한밖에 없다. 로하니 정부는 서방과의 핵합의를 통해 수백억달러 규모의 동결된 자산을 회수했으나 하메네이를 비롯한 고위성직자와 혁명수비대 등 보수 강경파 지도부는 상당 부분을 경제회생 대신 대외 군사지원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와의 경쟁을 주도하는 혁명수비대는 하메네이의 직접 지시를 받고 있다.

개혁파로 분류되는 로하니 정권의 외자 유치 등 개혁 시도는 신정 보수파의 반발로 번번이 좌절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반이란 정책까지 가세해 로하니 대통령의 개혁 추진력은 더욱 약해졌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