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미국 M&A 어떻게 봐야하나

[뉴스의 맥] FANG 파괴적 혁신… '경쟁'에서 '모험'으로
올해 미국에서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잇따르고 있다. 벤처들의 기업공개(IPO)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을 위시한 인터넷 기업들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이들 기업이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면서 기존의 기업 경쟁 질서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이런 변화를 일부에선 ‘팍스 아메리카나’ 대신 ‘팍스 테크니카’로 부르기도 한다. 지금의 경제 변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미국의 대형 약국체인인 CVS 헬스는 대형 건강보험사 애트나(Aetna)를 690억달러(약 75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지난 3일 발표했다.

CVS의 애트나 인수는 올해 미국 내 기업 M&A에서 최고액을 기록할 전망이다. 거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 월트디즈니가 추진하는 21세기폭스그룹 인수(680억달러 규모)도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이다. 이르면 13일 성사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이 1050억달러를 들여 퀄컴에 대한 적대적 M&A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관심이다. 시장조사회사인 딜로직에 따르면 11월에만 2000억달러 규모의 인수 관련 거래가 발표됐거나 진행됐다고 한다. 이 회사가 1995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월간 기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CVS와 디즈니는 업계 1~2위를 다투는 초대형 기업이다. CVS는 전혀 다른 업종인 보험사를 사들였고 디즈니는 동종의 업체를 인수하고 있다. 기업들이 수직 통합은 물론 수평 통합도 전개해 나가는 형국이다. 일부에선 기업들의 몸집 불리기라고 분석한다. CVS의 애트나 인수는 아마존의 의약품 유통업 진출에 앞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아마존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보험판매나 채혈 등의 서비스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디즈니도 넷플릭스의 공격에 맞서 폭스 인수를 통해 종적인 통합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뉴스의 맥] FANG 파괴적 혁신… '경쟁'에서 '모험'으로
일본 기업, 파괴혁신 두려움 90%

정작 이면에선 기존 사업자들의 다급함이 읽힌다. 아마존이나 넷플릭스 모두 오프라인 업계로선 공격자다. 엄청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단행한 기업들이기도 하다. 이미 아마존으로 망한 기업이 수백 개에 이르며 넷플릭스로 인해 도산한 케이블방송국과 DVD 대여업체도 부지기수다. ABC방송이 300명 이상을 해고하고 ESPN도 100명 이상을 해고하기로 했다고 한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지 10년차밖에 되지 않는 기업이다. 아마존 또한 의류나 식품 의약 등 다른 생태계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물론 아마존 넷플릭스만이 아니다. 우버나 에어비앤비도 시장파괴자다. 이런 파괴를 하는 기업만 수백 개에 이른다. 기존 기업들은 이런 침략자에 공포를 느낀다. 한 조사기관 서베이에 따르면 앞으로 3년간 자기 업계에 큰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경영자가 세계 전체 50%에 이른다고 한다.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국가는 일본으로 90%를 넘는다. 자사의 기술로는 이런 파괴적 혁신을 따라갈 수 없다는 응답도 전체의 47%였다.

물론 IPO가 줄어드는 것도 파괴적 혁신의 트렌드와 무관치 않다. 1998년 406개이던 기업의 IPO 수는 갈수록 줄어들어 지난해엔 105개에 불과했다. 웬만한 벤처는 더 이상 주식 상장을 꺼리고 있다. 그저 인터넷 대기업이나 펀드 투자가들에 인수당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상장이란 제도가 더 이상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극단적 견해도 있다.

'경쟁'이란 단어가 사라진다

재미있는 건 기업들이 더 이상 경쟁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투자기업 로젠버그 에쿼티가 미국 기업들의 연차보고서에 쓰인 단어를 조사한 결과 1995년에는 ‘경쟁(competition)’이란 낱말이 1만 단어당 8개가 쓰였지만 2010년도 이후엔 2개 이하로 줄어들었다. ‘경쟁자(competitor)’란 단어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미국 산업의 3분의 2가 1997년보다 2012년에 소수기업에 의해 집중돼 있다는 보고도 있다. 그렇다고 경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더 이상 라이벌 구분을 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경쟁 기업이 쳐들어올지 모른다. 단순히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핵심역량 확보를 위해 앞다퉈 M&A를 하는 배경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성공을 가져다 준 핵심역량에만 매달릴 순 없다. 기업들의 피말리는 미래와의 싸움은 진행형이다.

경쟁의 끊임없는 진화다. 기업의 경쟁 목표가 달라진 건 아니다. 경쟁 질서만이 달라졌을 뿐이다. 일부 학자는 지금을 유럽 모험상인이 주도하던 대항해시대에 비유한다. 경쟁에서 ‘모험(exploration)’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유럽식 자본주의와 달리 이런 모험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감수하며 받아들인다. 이 같은 대규모 파괴적 혁신을 용인하는 그런 문화다. 그속에서 새로운 경쟁 패러다임이 구축되고 경제적 질서도 새롭게 형성된다. 정작 규제당국은 오히려 M&A 심사를 늦추고 있다. 현재 법에서는 오히려 기존 기업들의 M&A를 따져본다. 정작 아마존이나 넷플릭스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경쟁을 강화함으로써 소비자복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두고 ‘반독점의 패러독스’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필립 하워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최근의 파괴적 혁신이 지속되고 전방위 경쟁이 진행되는 트렌드를 ‘팍스 테크니카(PAX TECHNICA)’로 부른다. 그는 이제 인터넷 기술이 가장 강력한 정치적 도구로 작용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2020년까지 300억 개의 물품이 서로 연결된다. 초연결 사회를 넘어선 초연결 지배사회다. 물론 자본주의도 네트워크 자본주의로 바뀌는 구조다. 이 기술을 통제하는 기업이나 사람들에게 정치나 모든 권력이 달려 있다고도 했다. 물론 이런 기술에 비관적인 시각도 있다.

미국은 클라우드 세대 육성

여하튼 경쟁 패러다임은 변했고 경제질서도 급격히 바뀌어가고 있다. 지금 세계 경제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대항해를 하고 있다. 지금의 인터넷 기업이 계속 파워를 가질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미국의 어린 세대들은 클라우드나 알고리즘을 당연히 알고 자란다. 물론 이들 세대의 사고는 우리와 다르다. 교사가 학생들의 과제를 클라우드로 직접 챙긴다. 최근 한국의 정보통신 능력이 저하됐다는 보고가 있다. 한때 반짝하던 한국의 ICT(정보통신기술)다. 파괴적 혁신의 씨앗은커녕 각종 규제에 묶여 ICT산업이 뒷걸음친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