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편견과 다양성
TV 프로 중에 모 방송국에서 하는 ‘복면가왕’을 좋아한다. 어쩌다 켠 TV에서 가면을 쓰고 노래하는 것에 끌려 팬이 됐다. 복면가왕의 특징은 노래 부르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편견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관객과 패널은 노래만 듣고 평가한다. 본질로만 평가하니 결과의 의외성이 커진다. 호기심이 배가되면서 재미를 더한다. 숨은 실력자를 발굴해 가요계를 더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든다.

필자가 복면가왕을 좋아하는 이유는 ‘편견 없이 본질을 보는 재미’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많은 편견으로 얼룩져 있다. 편견의 대상은 학교, 지역, 외모, 외국인, 탈북자, 여성, 종교, 성 소수자 등 다양하다.

여성에 대한 편견은 뿌리 깊다. 특히 능력과 외모와 관련된 편견은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출신 여성 프로골퍼의 얘기다. 언젠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은 실력보다 외모를 더 따져 불편했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일본은 외모 편견이 적어 편하게 경기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선 예쁘지 않으면 실력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성형수술의 성행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주민과 탈북자에 대한 편견도 만연하다.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됐는데도 은근히 무시하거나 경원시한다. 이주민이나 탈북민은 사회의 다양성을 키워주는 존재다. 다양성은 종의 생존과 번영에 결정적이다. 세균은 번식을 잘하는 세균과 번식하지 않고 버티는 세균 등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고 한다. 항생제가 투입되면 번식 중인 세균은 죽지만 번식을 멈추고 버티고 있던 세균은 살아남는다. 다양성이 종의 생존 경쟁력인 것이다.

영국 비평가 윌리엄 하즈리트는 “편견은 무지에서 나온다”고 했다. 한 단면만 보고 사물이나 사안을 판단하는 데서 편견이 생겨난다. 한때 바다의 포식자로 알려져 제거 대상이 된 불가사리도 편견의 피해자다. 죽은 물고기나 부패한 조개를 주로 먹는 불가사리는 바다를 깨끗하게 만드는 환경 지킴이다. 그런데 먹는 모습만 본 사람들이 아무거나 잡아먹는 포식자로 오인했다.

편견이 집단과 결탁하면 종종 파괴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한다. 종교적·인종적 편견은 비극적 테러 사건의 원인이 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편견도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 삶의 피로도를 높이고 비용이 늘어나게 한다. 금강경에 ‘여리실견(如理實見)’이라는 말이 있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본질을 보라는 얘기다. 다양성이 살아있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모두가 편견 없이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할 때다.

최신원 < SK네트웍스 회장 swchoi@s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