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송파 장미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 명일동 우성아파트, 고덕주공9단지.
왼쪽부터 송파 장미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 명일동 우성아파트, 고덕주공9단지.
재건축 초기 단계인 서울 강남권의 중층아파트 단지들이 ‘8·2 부동산 대책’ 이후에도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아직 조합 설립 인가를 받지 않아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와 같은 8·2 대책의 규제를 피한 데다 현 단계에서도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의 절차가 자유롭다는 이점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들 단지는 조합 설립을 최대한 늦추고 재건축조합설립 추진위원회(추진위) 상태로 사업을 추진하며 장기전에 들어갈 태세다.

◆서울 강남4구 재건축 추진 꾸준

24일 강남구청에 따르면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 한양1·2차’가 최근 추진위 설립 인가를 받았다. 한강변에 있는 이 아파트는 최고 13층, 1232가구 규모인 중층 대단지다. 각각 1977, 1978년 입주해 재건축 연한(30년)을 10년가량 넘겼다. 인근 ‘한양3·4·6차’와 ‘현대8차’도 예비추진위원을 모집하고 있다. 추진위 설립 인가를 신청하기 위한 절차다. 총 3840가구 규모인 ‘현대1~7·10·13·14차’(압구정구현대)는 최근 재건축 찬반 설문을 완료했다.
강남 4구 중층 대단지, '재건축 장기전' 돌입
강동구 고덕·명일동 일대의 15층짜리 ‘명일신동아’ 주민들도 지난달 재건축 찬반 설문을 거쳐 이달 17일 강동구에 안전진단 신청을 냈다. 주민 간 재건축추진위원회(가칭)를 결성해 정식 추진위 인가를 받기 전까지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아파트는 1986년 첫 입주가 이뤄져 지난해 재건축 연한을 채웠다.

비슷한 시기 입주한 인근 ‘고덕주공9단지’ ‘명일우성’ 등도 연이어 재건축 사업에 돌입했다. 고덕주공9단지는 지난달 주민 간 추진위(가칭)을 결성했다. 명일우성은 소유자들을 대상으로 재건축 찬반 설문을 벌일 예정이다. 명일동의 A공인 관계자는 “대책 발표 이후에도 주민 대부분이 여전히 재건축 사업 진행에 동의하고 있다”며 “사업이 초기 단계여서 주민들도 8·2 대책에 그다지 일희일비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재건축 추진이 속속 가시화되면서 이들 단지는 8·2 대책 이후에도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압구정동 현대8차에서 최근 매물로 나온 전용 107㎡의 호가는 18억2000만원 선이다. 지난달 실거래가(17억원)보다 1억2000만원 오른 가격이다. 한양1차 전용 78㎡ 매물은 호가가 16억7000만원 선으로, 대책 전 호가(16억5000만원)보다 2000만원가량 올랐다. 명일동 명일신동아 전용 127㎡는 대책 전 9억원 선이던 호가가 9억5000만~9억7000만원으로 뛰었다.

압구정동 B공인 관계자는 “대책 직후 거래가 다소 뜸해졌지만 여전히 문의는 많다”며 “어차피 재건축 사업은 계속하는 것 아니냐며 매수 문의를 하는 장기 투자자가 많다”고 말했다.

◆“조합보다 추진위 단계가 이득”

초기 단계 재건축 단지가 8·2 대책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등에 따르면 조합이 아니라 추진위 인가를 받은 상태로도 상당한 절차까지는 사업을 할 수 있다. 추진위는 개략적인 정비사업 시행 계획을 작성하고, 경쟁입찰 방식으로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를 선정할 수도 있다. 예컨대 2003년 12월 추진위를 설립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그동안 조합을 설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정비계획안을 제출했다.

무엇보다 8·2 대책을 비켜갈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이점으로 꼽힌다. 재건축 단지 매매를 사실상 차단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규정은 조합이 설립된 재건축 단지에만 적용된다. 송파구 신천동의 ‘장미1~3차’는 지난해 추진위 인가를 받은 뒤 연내 조합 설립 인가를 신청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권의 한 재건축 조합추진위 관계자는 “8·2 대책 이전에는 각 사업지에서 조합 설립을 서둘렀으나 이제는 다양한 규제가 적용되는 만큼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추진위 단계에서도 가능한 사업 절차를 최대한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