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소아 장애판정, 빠를수록 도움된다
많은 사람이 질병(disease)과 장애(disability)를 혼동하는데 알고 보면 그 뜻이 확연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평소 증상이나 징후가 없던 건강한 사람이 감염이나 외상, 영양 불균형 등 다양한 문제로 병적 증상이나 징후를 보이는 상태를 질병이라 한다. 소수 희귀 질병을 제외하면 많은 경우에 치료법이 알려져 있다. 장애는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이더라도 장기간 지니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 등이 있다. 안타깝게도 장애는 치료 대상이 아니라 재활과 관리, 혹은 교육의 대상으로 여겨지며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뚜렷한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치료법이 존재한다면 용어 정의상 장애가 아니라 질병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는 장애에 해당하는 환자가 방문했을 때 치료보다는 환자가 정확히 어느 정도 상태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밟는다. 환자나 보호자도 그런 목적을 갖고 병원을 방문하는데, 이를 장애판정이라 한다. 장애판정 과정은 해당 환자에게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정된 복지예산 안에서 행정기관의 지원은 급수에 따라 다르게 이뤄지는데, 급수가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지원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소아정신과 영역에서는 지적장애와 발달장애(자폐성 장애)를 주로 판정하는데, 진료실에서는 이 장애판정을 두고 전문의와 환자 및 보호자가 옥신각신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장애판정이 환자의 현실과 달라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뒤늦게 장애판정을 받으면서 적절한 지원을 받아야 하는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본다. 장애판정에서의 불이익이나 장애판정 과정의 불만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소아정신과 영역의 장애판정은 가급적 이른 나이에 이뤄지는 것이 유리하다. 특별한 치료가 없는 대부분의 다른 장애와 달리 소아정신과 영역에서 판정하는 지적장애나 발달장애는 일찍 발견해 놀이치료와 언어치료, 인지치료를 시행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이후의 발달이 촉진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조기에 치료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조기에 장애판정을 받아 빨리 지원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인지기능의 어려움이 있고 사회성도 부족하며 자폐적 성향을 보이는 등 지적장애와 발달장애 양쪽에 해당되는 아이는 1차적으로 높은 급수가 나오는 쪽으로 판정을 받아야 한다. 만일 두 장애 영역에서 같은 장애 급수가 나오는 상황이라면 가급적 발달장애 쪽으로 받아야 나중에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보더라도 지적장애와 발달장애가 동시에 있을 경우 더 포괄적인 개념인 발달장애로 판정받는 것이 적절하다. 현실적으로는 여러 치료를 통해 인지기능이 나아졌지만 자폐적인 성향이나 공격적인 성향이 나아지지 않았을 때 인지기능만으로 판정하는 경우에는 이후 재판정하는 시기에 환자의 현실적인 상황에 맞지 않게 급수가 낮아지는 쪽으로 조정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때 다시 지적장애를 발달장애로 전환하려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셋째, 소아정신과의 장애판정은 통상 다른 장애와 달리 영구 판정을 미리 내지 않고 주기적으로 재판정한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인지기능이나 언어, 사회성 등은 아이의 성장 발달과 함께 변동하며, 이를 주기적으로 재판정하도록 돼 있다. 통상 2년에서 3년에 한 번 재판정하는 것을 권유하는데 판정이 조정되는 경우도 자주 본다.

마지막으로 재판정이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다른 중증 질환과 같이 있는 경우거나 인지능력 부족이 극심한, 주로 장애 1급에 해당하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담당 의사 판단에 따라 이른 시기에 영구 판정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므로 보호자는 담당 의사와 상의해 이에 대한 의견을 적극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병훈 < 서울연마음클리닉 원장 , 정신과·소아정신과 전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