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청와대 서별관 회의
2008년 10월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국정감사를 받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도시락을 먹으러 간다”며 자리를 떴다. 야당 의원들이 “국감 중에 자리를 뜨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지만, 강 장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서둘러 일어선 것은 ‘서별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시장이 요동치자 고위 당국자들이 수시로 청와대 서별관에 모여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대책을 논의했다.

서별관 회의는 ‘거시정책협의회’의 별칭이다. 청와대 서쪽 끝에 있는 서별관에서 회의가 열린다고 해서 그런 별칭이 붙었다. 서별관이 외부에 널리 알려진 것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청와대와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모여 외환위기 대응책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다.

강경식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쓴 회고록 《강경식의 환란일기》에는 “1997년 5월4일 저녁 한은 총재(이경식), 청와대 경제수석(김인호)과 내가 서별관에 모여 회의했다”는 대목이 있다. 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도 지난해 7월까지 서별관 회의는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 땐 구조조정 대책이 서별관 회의를 거쳐 발표됐다. 2010년 10월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은 “서별관에서 대북자금 지원 문제가 비밀리에 논의됐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이 이곳에서 협의됐다. 지난해 7월 야당은 서별관 회의에서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강압적으로 결정했다며 이 회의 폐지를 주장했다. 이후 지금까지 서별관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청와대 참모들이 근무하는 여민관이나 부처에서도 할 수 있는 회의를 서별관에서 한 이유는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내 외딴 곳에 있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고, 도청 우려도 적다. 서별관 회의를 두고 청와대가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려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그제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 모여 현안 간담회를 했다. 장 실장은 “부총리가 경제 중심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부총리 집무실에 왔다”며 “새 정부에서는 서별관 회의라는 용어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는 좋지만 회의 장소가 문제일까.

필요하다면 서별관이든 어디든 모여 깊이 있게 토론해 나라에 유익한 정책들을 이끌어내는 게 더 중요할 듯싶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