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트럼프의 환율 압박 만큼은 저지해야
미국 재무부는 이달 중순께 ‘환율조작국’을 지정, 발표한다. 미국 통상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이 올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미국이 체결한 모든 통상조약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FTA를 예로 들고 있어 이 두 가지 통상조약에 대한 재협상 요구는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런 전방위 통상압력이나 관세정책으로 미국의 대외무역적자는 줄어들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영향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원점 회귀할 것임을 이론은 가르쳐주고 있다.

무역적자는 그 자체가 원인이 아니다. 나라 경제는 투자에 비해 저축(민간저축 및 정부저축)이 과소할 때 그 결과가 무역적자로 나타난다. 그러면 트럼프 정부가 채택하려는 통상 및 관세정책 등이 이런 미국 기업들의 투자결정 및 개개인 또는 정부의 소비 행태를 변화시킬 것인가? 장기적으로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리라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그러면 어찌 될 것인가? 환율이 통상정책 등의 영향을 그대로 흡수해버려, 미국의 무역적자는 원상 복귀해 버린다는 것이 그 결론이다.

예컨대 미국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국경조정세를 도입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미국이 수입하는 물품에는 세금만큼의 페널티가 매겨지고 수출하는 물품에는 세제혜택이 주어지므로 수출이 촉진되고 수입이 억제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즉각적인 달러화 수요를 불러일으켜 달러화 강세가 나타나며, 달러화 강세는 정확히 국경조정세의 영향을 상쇄시키는 선에서 마무리되므로 결국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환율압력 및 통상정책은 원래의 무역적자로 회귀해 버릴 것이란 결론이다.

미국의 대외무역적자는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역적자를 없애겠다는 것은 달러란 종이지폐를 찍어주고 해외에서 물건을 들여올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것인데 어느 편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겠는가? 즉 무역적자 및 그로 인한 제조업 일자리 상실은 발권력을 가진 미국이 누리는 풍요로움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라 봐야 한다.

그러면 트럼프 정부는 왜 줄이지도 못할 무역적자 축소를 추진하는 것일까. 첫째, 통상정책이나 국경조정세 등이 달러화 강세를 불러오더라도 최소한 환율조작국 압력 등을 통해 그 기간을 상당기간 유예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럴 경우 적어도 자신의 임기에는 무역적자 축소 및 그로 인한 제조업의 회귀를 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환율이 통상정책 효과를 흡수해 버리더라도 최소한 업종 간 고용 변화 같은 마이크로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역적자는 원상태로 돌아가더라도 결과적으로 고소득층인 서비스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자신을 지지하는 계층인 ‘러스트 벨트’의 제조업 일자리는 늘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 점이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안다면 협상이 쉬워지는 법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첫째, 대미 무역흑자를 단기적으로 없애는 한이 있더라도 환율 압력은 막아야 한다. 미국이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3% 수준이지만 원화가치가 오르면 그 영향은 우리의 전체 수출에 미치기 때문이다. 둘째, 한·미 FTA 재협상 요구는 미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를 어떻게 충족시켜 줄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의 대응 카드를 마련하고 최대한 한·미 FTA 재협상을 늦추면서 NAFTA 재협상 상황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이래저래 새로 출범할 우리 신정부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하태형 <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