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민생 못 살리는 민생회복지원금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 국민에게 민생회복지원금을 지불하자고 제안했다.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총 13조원을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평균적 시민의 삶이 어려우니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은 ‘온정적’이다. 이것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으로 비칠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지적을 하고 싶다.

현재 민생이 어렵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선거 유세 중 시장에서 만나는 소상공인들의 이야기는 선거 후 출구 조사처럼 틀린 정보일 수도 있으니 관련 데이터를 보는 게 순서일 듯하다. 우선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물건이 잘 팔리는가를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를 보자. 이 지수의 연간 변화율은 올 1월 -3.3%를 기록해 소매 경기가 안 좋다는 것을 보여준다. 2월에는 0.9%로 회복했다. 1월 지수만을 기준으로 민생을 판단하면 민생회복지원금이 필요하다고 할지 모르나, 그런 기준이라면 작년 가을과 여름 그리고 재작년 겨울도 비슷한 정도로 안 좋았다. 3년 내내 민생회복지원금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가장 나빴던 적은 2020년 3월 -7.8%이고 이때 코로나19 지원금이 지급됐다. 이런 데이터 움직임을 보면 지금은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난 5년간 기준으로 특별히 나쁜 시기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현재 소매 경기 부진은 높은 물가에 따른 실질 소비 지출 감소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니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임금도 물가에 연동해서 올라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언론에 언급되는 또 다른 민생 관련 자료는 은행 연체율이다. 중소기업과 가계의 연체율은 올 2월 202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개인이 이자를 제때 낼 만큼 소득이 충분치 않다는 뜻이다. 심지어 코로나19 초창기보다 높다. 이유는 자명하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이자율을 올렸으니 이자를 제때 못 내는 중소기업과 개인이 많아진 것이다. 민생회복지원금이 은행 연체율 상승을 막아줄 수 있을까? 기업 매출이 증가하면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지도 모르나 즉효약은 아니다. 즉효약은 대출 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 같은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시행한 조처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자율이 높아진 것은 인플레 때문이니 빨리 인플레를 제압하는 것이 은행 연체율 상승을 막는 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회복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기본소득 형태로 지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지난 대선에서 주장했으나 별반 호응을 얻지 못한 정책인데, 왜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다시 꺼내는지 모르겠다.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한다고 할지라도 저소득층에 많이 줘야 소비가 증가한다. 고소득층은 이미 소득이 많기 때문에 공돈이 생기더라도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기본소득 형태의 지원금은 효과적인 소비 진작 정책이 아니다. 노력하는 모습은 칭찬해 주고 싶지만, 정책 방향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설사 채택되더라도 지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한술 더 떠서 민생회복지원금을 지역상품권 형태로 지원하자고 주장한다. 지역 상공인을 위한 좋은 정책이라고 주장하니 딱히 반대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볼 점이 있다. 이제 어버이날이 다가오는데 어르신들은 어떤 선물을 가장 좋아하실까? 대부분 인삼, 옷 등의 선물보다 현금을 선호하신다. 어르신들이 현명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소비자는 주어진 돈으로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만족을 극대화한다. 마찬가지로 국민도 역시 현금을 선호한다.

결론적으로 현재 다소 부진한 소매 실적과 높아진 연체율은 인플레라는 병이 일으킨 증상이다. 따라서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인플레 제압이 있어야 한다. 이런 시기에 채권 발행을 통해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면 당장 소고기를 사 먹을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인플레를 악화시키고 이자율을 높여 장기적으로 우리의 경제생활을 더 힘들게 할 것이다. 당장 힘들더라도 쓴 약을 먹고 있다는 심정으로 참아야 한다. 이보다 훨씬 힘든 과정도 감내한 저력을 우리 국민은 갖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