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최근 한 학부모로부터 간곡한 상담 요청을 받았다. 두 자녀를 대학까지 졸업시킨 어머니인데 사연은 이랬다. 큰아들은 올 2월 최상위권 사립대 상경대학을 졸업했는데 벌써 30대 초반이다. 입학한 지 10년이 넘어 졸업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인데 이미 실패의 경험을 했고 또다시 공부 중이다.

둘째 딸아이는 올해 20대 중후반으로 상위권 사립대 사범대학을 다니다 의대 진학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3학년 때 휴학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치러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이후에도 2년 동안 의대 학사편입, 약학대학 진학 등을 시도해봤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졸업 후 2년이 지났지만 아직 구직에 성공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중·고교와 대학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동네 영웅이었다. 자녀 모두 최고 수준의 사립대에 합격했으니 그때는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만 해도 속 터지는 두 자녀만 남은 상황이다. 어머니는 앞으로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지 조언을 구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립니다.”

지금의 학부모들은 한국의 고도성장 시기를 경험했다. 그때의 성공 방정식은 간단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만사형통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맞았던 거다. 그러나 현시점은 저성장 시대며, 지금의 성공 방정식은 부모 세대보다 훨씬 고차원적이다. 대학에 잘 가는 건 경쟁력의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틀리다. 내가 1987년 과외를 시작해서 2009년 강의를 놓는 순간까지 제자들에게 “공부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이것도 지금은 틀리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르친 세대에 사회적 부채의식이 있다.

나를 포함해 우리 부모 세대들은 이제 의식의 지체 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자녀 세대인 초·중·고교생들은 본인이 중심이 돼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는 자아성찰의 과정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이와 함께 끊임없는 도전과 시행착오를 통해 고통을 수반하는 인내의 시간을 겪어내야 하며, 변화와 혁신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망의 절실함을 스스로 키워야 한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젊었을 때 그리 속을 썩여도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하며 모든 일을 스스로 깨우치길 바라셨고 나를 믿어주셨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자녀에게 믿음을 가지고, 시행착오 속에서 인생의 진리를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손주은 < 메가스터디그룹 회장 son@megastudy.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