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 등 기술 변화가 인류 진화를 결정할 것"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교수 방한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 등의 저서로 유명한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뉴칼리지 명예교수(사진)는 “앞으로 인류는 생물학적 진화보다는 문화적·기술적 진화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킨스 교수는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한국 독자와의 첫 만남에서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철저한 진화론자인 그는 자신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이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은 이 책이 끼친 영향을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지식사회에 미친 영향에 빗대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가 인간이 유전자가 아니라 기술과 문화의 진화에 지배될 것이라고 얘기한 까닭은 무엇일까. 도킨스 교수는 통상적으로 진화가 어떤 방향으로 이뤄지는지 구체적으로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도킨스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300만년간 뇌가 점점 커지는 방향으로 빠르게 진화했다. 더 높은 지능을 갖게 되면서 위험을 피하고 다양한 생존 능력을 갖춰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큰 뇌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자식을 낳게 됐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오래 살아남은 사람이 결국 자녀를 낳고 유전자를 대물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는 뇌의 크기가 생존과는 상관없게 됐고 자식을 낳는 데 더는 유리하다고 보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도킨스 교수는 인류가 두 종으로 분화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진화의 주요 이벤트인 종 분화가 이뤄지려면 지리적 격리가 필요한데 다양한 인종이 하룻밤에도 수천㎞를 오가는 시대가 오면서 종 분화가 이뤄지기는 어렵게 됐다는 설명이다. 대신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하면 유전적 흐름이 끊어지면서 지구 인류보다 훨씬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새 인류가 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이 유전자와 자연 선택이 주도하는 생물적 진화보다 문화적·기술적 진화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기술 진화가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동차와 컴퓨터, 로봇,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며 컴퓨터가 인간을 따라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스티븐 호킹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엘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도 말했듯 AI와 로봇의 기술 진화가 우리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도킨스 교수는 세계적 석학인 스티븐 핑거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말을 빌려 “노예제 폐지나 여성 참정권 부여를 보면 인류의 역사는 결국 옳은 방향으로 굴러간다”며 인류가 맞을 미래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는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