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무섭게 달려오는 '기술빅뱅'…13년 뒤 SF는 현실이 된다
직장인 김모씨의 집. 알람이 울리고 김씨가 깨어나자 자동으로 블라인드가 열리고 조명이 켜진다. 오디오에선 미리 선곡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에어컨은 김씨의 체온에 따라 온도를 조절한다.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인공지능 비서 알파가 오늘의 스케줄을 설명한다.

‘반려로봇’ 로보캣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그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고 회사로 향한다. 늦은 시간 귀가하는 길, 어두운 골목 곳곳에 드론(무인항공기)이 날아다닌다. 스마트폰으로 신청하면 언제든 날아와 경호를 해준다.
1900년(왼쪽)과 1913년 4월 부활절 아침에 미국 뉴욕 5번가를 찍은 사진. 불과 10여년 만에 말과 마차가 사라지고 자동차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LG경제연구원 제공
1900년(왼쪽)과 1913년 4월 부활절 아침에 미국 뉴욕 5번가를 찍은 사진. 불과 10여년 만에 말과 마차가 사라지고 자동차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LG경제연구원 제공
LG경제연구원의 미래 예측을 담은 《빅뱅 퓨처》에서 ‘2030년 어느날 한 직장인의 일상’을 그린 가상 시나리오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최첨단 기술로 인한 삶의 변화를 실감하는 요즘이지만 불과 13년 후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현실화될까.

LG경제연구원 소속 저자들은 두 장의 옛날 사진을 소개하는 것으로 미래 예측의 포문을 연다. 1900년과 1913년 부활절 아침, 정확히 13년의 간격을 두고 뉴욕 5번가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다. 1900년엔 말과 마차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1913년엔 마차가 온데간데없다. 대신 포드의 T형 자동차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세상이 때로 무서운 속도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그 변화가 만들어내는 파괴력이 인간의 상상력으론 가늠하기 어려운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들은 앞으로 이와 꼭 닮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경제, 사회, 기술 등 각 분야에서 누적된 거대한 힘이 어느 순간 변곡점을 지나면서 세상의 판을 뒤흔드는 장면을 곧 목도하게 될 것”이라며 ‘거의 모든 것의 빅뱅’을 예고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다가올 2030 시대는 ‘기술의 빅뱅 시대’다. 인공지능을 필두로 빅데이터, 클라우드, 로봇, 가상현실, 3D프린팅, 자율주행 자동차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기다. 이로 인해 전례 없는 변화와 충격이 곳곳에서 나타날 것이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의 발달로 ‘디지털 빅브러더’가 출현할 수도 있고, 인간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나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인간의 존재 자체에 관한 고민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반드시 위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똑똑한 기계’와 공생하며 이를 활용할 방안을 찾아낼 것이다.

생명과학과 의료 기술 혁신은 100세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이제 65세가 넘어도 과거처럼 늙고 병든 인생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전히 40~50대와 비슷한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젊은 노인’이 대거 등장할 것이다. 2030년 신노년층은 왕성한 경제활동으로 시장의 주요 고객층이 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집단과 커뮤니티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새로운 인적 자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고령화로 세대 갈등이나 노인 빈곤, 사회 활력 저하와 같은 그늘이 짙어질 수도 있다. 2030년이면 고령화 흐름에 가속도가 붙어 한국은 일본과 세계 최고령 국가 타이틀을 다투게 된다. 노후 대책이 부실한 지금의 은퇴 세대 상당수가 노인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2030 미래 세상’을 알리는 변화의 기운은 글로벌 경제와 국제 정세에서도 감지된다. 지난해 세계를 뒤흔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이 나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1980년대 이후 거침없이 이어져온 무역 자유화와 세계화 흐름에 제동이 걸렸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불황은 일시적이며, 경제는 곧 성장세를 회복한다’는 명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성장 고착화로 인플레이션이 사라지고 저금리가 일상화하는 등 세계 경제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2030년 글로벌 경제 질서의 또 다른 중요한 흐름은 중국의 부상이다. 1980년대 말 냉전 종식 이후 20여년간 지속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미국과 중국의 G2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향후 중국 경제의 성장세에 브레이크가 걸린다고 하더라도 중국 기업과 소비자의 영향력은 앞으로 계속 커질 것이다.

저자들은 기술, 경제, 정치, 사회, 국제 분야의 변혁을 개별적으로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조망하며 ‘2030 미래 세상’에 대한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함께 제시한다. 마지막 장에선 친절하게도 ‘2030’ 세대와 ‘4050’ 세대로 나눠 개인들이 미래사회를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준다. 저자들은 “과거와 다르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과거의 지식만으로 미래에 대응할 수 없다”며 “미래를 바꾸거나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살아갈 개인의 모습은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