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트럼프발 안보 격랑? 국내 요인이 더 문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미국 대선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으로 마무리됐다. 트럼프는 이민자 및 무슬림에 대한 비하, 성희롱 발언 등으로 많은 파문을 일으켰지만 그가 외친 ‘미국우선주의’는 중하층 백인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고, 결국 이변을 만들어냈다.

트럼프 당선에 즈음해 한국이 안보와 관련해 우려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트럼프가 △‘방위비 부담금 증액’ ‘주한미군 철수’ 등 고립주의적 발언을 자주 했다는 점 △북핵 관련 강온(强溫) 발언에서 보듯 대북기조가 불확실하다는 점 △지한(知韓)파나 친한(親韓)파도 아니고 안보 전문성이나 이념적 소신을 갖춘 지도자도 아닐 것이라는 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트럼프발 변화는 우려했던 만큼 엄청나지 않을 것이며 국가안보에 격랑을 몰고 올 단초는 오히려 국내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급격히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첫째, 트럼프가 주장한 고립주의적보호주의적 구호들은 공화당의 전통적 기조와는 상반되는 것으로 공화당의 지지를 받는 것부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공화당과 민주당은 공히 온건 보수정당으로서 대외정책 기조가 비슷하며, 미국은 사태의 심각성이나 국익에 미치는 영향의 과소에 따라 초당적으로 동맹정책과 해외 개입을 결정해 왔다. 예를 들어 중국의 현상타파적팽창주의적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우방들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미국의 ‘재균형 전략(rebalancing strategy)’은 초당적 과제다. 미국이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차단한다면 아시아 전체가 ‘중국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 수 있는데, 이런 세력 판도의 변화는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완전히 포기할 때만 상상할 수 있다.

셋째, 미국의 복잡한 정책형성 과정은 특정 지도자의 돌출 발언들이 섣불리 국가정책으로 입안되는 것을 견제한다. 의회와 언론의 역할이 막강할 뿐 아니라 워싱턴DC에만 200개가 넘는 대외정책 싱크탱크가 있고 정부와의 인사교류도 빈번하다. 1970년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이 불발로 끝난 것도 이런 장치들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대국굴기(大國起)’에 여념이 없는 중국, 군사적 초강대국 복귀에 절치부심하는 러시아, 전후(戰後)체제 탈피와 재무장을 서두르는 일본, 북핵 등에 포위당한 상태에서 경제성장이 멈춘 지 오래며, 한국의 안보위상은 나날이 주변부화왜소화고립화되고 있다. 이런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에서 한국 지도자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미국 국민이 보여준 고립주의적 추세지만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다.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시끄러운 시기에 정치인들의 움직임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권력을 누리기에만 바빴던 무책임한 사람들, 나라가 망가지든 말든 혼란을 이어가려는 사람들, 혼란을 틈타 철부지 여중생들에게까지 ‘혁명정부 수립하자’는 피켓을 들려 거리로 내보내는 사람들은 있어도, 규탄할 것은 규탄하더라도 국정은 반듯하게 굴러가도록 돕자는 정치인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와중에 헌법에도 없는 거국중립내각이 거론되더니 갑자기 세상이 바뀐듯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취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 중단, 역사교과서 개정 중단 등의 주장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고립주의의 선도자를 자처하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시기에 그런 한가한 외침들이 동맹과 국가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숙고해야 한다. 그것들이 몰고 올 격랑과 역풍, 그리고 역사적 심판을 유념해야 한다.

김태우 < 건양대 교수 전 통일연구원장·객원논설위원 defensektw@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