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공백을 막기 위한 초당적 위기수습 방안으로 정치권에서 제기된 거국중립내각이 오히려 여야간 충돌로 또 다른 정쟁의 불씨로 지펴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의혹이 언론을 통해 불거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대국민사과를 한 이후 정치권에서 거국중립내각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야권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문 전 대표는 26일 처음 이를 거론했고 같은 날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도 언급했고, 새누리당에서는 대권주자로 김무성 전 대표가 27일 이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공식적으로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30일 긴급 최고위에서 야권 요구를 수용한다면서 박 대통령에게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하는 입장을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는 물론 이 방안을 처음 제기했던 문재인 전 대표까지 새누리당이 주도하는 거국중립내각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국면전환용 짝퉁 거국내각 시도"라는게 야당의 반대 이유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야당이 먼저 제안하고 이를 걷어차는 것은 정치적 노림수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문제의 출발은 정치적 셈법의 충돌도 있지만, 거국중립내각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일치하지 않고 다르다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야권은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2선으로 후퇴해 국정에서 사실상 손을 떼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입장이며 극단적으로는 대통령 하야를 전제로 하는 주장까지 있고, 새누리당은 여야가 동의하는 총리를 추천, 임명해 새 총리가 내각을 구성하는 의미에서 거국내각을 구상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각에서는 책임총리제를 거국내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또 개념을 구체화하지 않은 채 거국중립내각 단어만을 언급한 경우도 있다.

여야 주요 대권주자들과 여야 지도부의 거국중립내각 발언 내용을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 "박 대통령은 당적을 버리고 국회와 협의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시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강직한 분을 국무총리로 임명, 총리에게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시라. 거국중립내각으로 하여금 내각 본연의 역할을 다하게 하고, 거국중립내각의 법무부장관으로 하여금 검찰 수사를 지휘하게 하시라. 대통령이 그 길을 선택하신다면 야당도 협조할 것이다.

그것만이 표류하는 국정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최후의 방안이다"(10월26일, '표류하는 국정을 수습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긴급성명에서)
▲민주당 김부겸 의원 = "박 대통령은 총리를 포함한 내각을 전부 사퇴시키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로 참모를 바꾸는 등 일련 사태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에 대한 예의로 내각이 총사퇴하는 만큼 새로운 내각은 대통령 마음대로 짜지 말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각 분야 대가들을 불러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26일 안동대 경북발전연구소 초청 강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 "신뢰를 잃은 대통령은 국가를 경영할 권위와 자격을 상실했다.

헌정질서와 국기를 바로 세우는 것이 최우선이다.

비서진 전면교체와 거국중립내각을 신속하게 구성해야 한다" (26일 SNS 글에서)
▲이재명 성남시장 = "대통령이 하야하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 국가권력을 다 넘기는 게 맞다"(26일 라디오 인터뷰)
▲박원순 시장 = "청와대 비서실과 내각의 총사퇴라고 하는 인적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대통령은 탈당하는 것이 마땅하다"(27일, SNS 방송 '원순씨의 X파일'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가 리더십을 갖고 현재 체제가 유지돼서는 안된다.

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거국중립 내각이 구성돼서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27일, 개헌 토론회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 = "여야를 넘나드는 협치가 가능한 분을 총리로 여야가 함께 찾아야 한다" (2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손학규 전 대표 = "여러 방법이 있다.

국가적 위기상태인 만큼 거국내각 중립내각도 있을 수 있고, 여야간 대연정을 생각할 수도 있다" (27일 '해공 신익희 정신의 현재적 의미와 계승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 = "박 대통령은 당적을 정리하고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검토할 때이다"(28일, 당 비상대책위 회의)
▲남경필 지사 = "경제와 안보를 책임질 총리의 역할이 막중하다.

정파를 넘어서는 협치의 리더십 즉, 협치형 총리가 필요하다"(30일, 페이스북)
▲새누리당 최고위 결정 = "여야가 동의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박대통령에 촉구하기로 했다"(30일, 최고위)
▲민주당 추미애 대표 = "진상규명이 선행되지 않는 거국내각은 국면전환용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국민에 석고대죄해야 할 집단이 거국내각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다.

국민은 면피용, 국면가리기용 거국내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31일 최고위)
▲박지원 대표 = "거국중립내각 구성의 선결조건은 최순실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대통령의 눈물어린 반성, 그리고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이다.

중립내각 구성을 위해선 대통령이 3당 대표와 협의하고 그 결과의 산물로 내놔야지, 최순실 사건이 검찰에 의해서만 발표되고 인사국면으로 전환시키려하는 '전략적인 꼼수정치'에 이제 국민이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31일 비대위)
▲문재인 전 대표 = "새누리당이 총리를 추천하는 내각이 무슨 거국중립내각인가.

짝퉁 거국내각으로 위기를 모면할 심산인가.

거국중립내각이 되려면, 박 대통령이 총리에게 국정의 전권을 맡길 것을 선언하면서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에 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해야 한다.

새 총리의 제청으로 새 내각이 구성되면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할 것이다" (31일 입장문)
▲김부겸 의원 = "거국중립내각도 진심으로 동의한다면 조각에 있어 새누리당이 결코 먼저 입을 떼선 안 된다.

우선 대통령이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들을 만나 거국내각 구성의 용의를 밝히고 총리 후보자를 추천하면 그대로 임명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 (31일 오후 페이스북)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 거국중립내각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데다 '박근혜 헌법파괴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검찰수사를 유야무야되게 할 우려가 있다.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려면 각 당이 몇 개의 자리를 책임질지, 어느 부처의 장관을 맡을지 등을 두고 끝없는 싸움과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은 자칫 국민께 권력 나눠 먹기로 비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처음 거국내각을 말씀했을 때 저는 그것이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실 가능한 해법으로 제가 내놓은 대안은 대통령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즉각 해임하고, 대통령이 외교를 포함해 자신이 가진 모든 권한을 총리에게 위임할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국회에서 3당 합의를 통해 총리를 선출하고, 권한을 위임받은 총리가 내각추천권을 활용해 새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새로운 총리가 국회의 협조 속에 국정 공백을 수습하고, 국가를 임시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이다.

대통령은 상징적인 존재로 임기를 마치는 것이며, 새 총리 체제는 엄정한 중립을 유지하면서 내년 대선을 관리해 새로운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운영되는 과도내각이다" (31일, SNS 통해 지역위원장들에게 보낸 글)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서혜림 기자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