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49명이 가슴 깊이 묻어둔 사부곡
“어, 어머니는 심장이 터질 듯 외치는 감탄사라면 / 아, 아버지는 내 몸이 불탈 때 부르는 마지막 구조신호다 // 우주의 어둡고 추운 행성일 때 아, 아버지라고 외쳐 / 나는 그 사람의 운명을 공전하며 자전하는 푸른 항성이 되었다.”

정일근 시인의 시 ‘아아아, 아버지’의 일부다. 그는 이 시를 지은 뒤 “내 어릴 때 떠나신 내 아버지. 이 별에서 딱 열 해를 같이 지냈다. 다시 만난다면 나무늘보처럼 자전하고 공전하는 아버지의 별이고 싶다”고 메모했다.

시인 49명이 아버지를 주제로 쓴 미발표 시 49편을 묶어 《굽은 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나무옆의자)를 냈다. 고두현 공광규 류근 송경동 이재무 장석남 정일근 전윤호 정호승 함민복 등 유명 시인이 총출동했다. 지난해 시인 49명이 어머니를 주제로 쓴 시를 엮어 펴낸 《흐느끼던 밤을 기억하네》의 후속작이다. 시마다 그 시를 짓게 된 뒷얘기를 담은 ‘시작 메모’가 달려 있다.

어린 시절 가족이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했던 고두현 시인은 성장한 뒤 ‘내 집’을 갖고 싶었다. 살 형편이 되지 않아 직접 집을 짓느라 심신이 지쳐갈 무렵 문득 생전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니 배는 묵어서 타고 / 집은 꼭 사서 들어라 / 물이 새면 배가 가라앉고 / 몸 상하면 집도 곧 무너지느니.”(‘배는 묵어 타고 집은 사서 들라’ 부분)

시집에 참여한 시인은 모두 남성이다. 늙거나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는 애잔한 마음이 시에 녹아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하는 시, 아버지가 살아온 내력을 담은 시, 아버지에게 삶의 지혜를 구하는 시를 3부로 나눠 담았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