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8곳 달해 투자 매력 떨어져…개발 사업자 나서지 않아 지정 취소 잇따라
입주기업 2천100곳 중 외국社 고작 10%…"외자유치로 성장모색" 취지 '무색'


외자유치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삼겠다던 경제자유구역이 외국계 기업이 외면하고,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개발 사업자도 나서지 않으면서 '동네 산업단지' 수준으로 전락했다.

면밀하고 냉정한 분석 없이 의욕만 앞세운 바람에 전국 8곳에 지정될 정도로 남발, 희소성이 떨어져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 탓이다.

사업지 조성에 뛰어드는 사업자가 나서지 않아 지구 지정이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입주 기업 90%가 국내 중소기업들로 채워지면서 빛이 바랬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촉진해 국가경쟁력 강화와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자는 게 경제자유구역 지정 취지지만 현실은 애초의 장밋빛 청사진과는 거리가 멀다.

전국 8곳에 지정된 경자구역 가운데 개발 사업자를 3년 동안 찾지 못해 지구 지정이 일부 취소된 곳이 적지 않다.

입주할 기업도 확보하지 않은 채 덜컥 부지 조성을 서두르다가 혈세를 낭비한 곳도 있다.

외국자본 유치가 목적이었지만 정작 경자구역에 입주한 국내 기업과 외국 투자기업의 비율이 9대 1에 달해 '무늬만 경자구역'이라는 조롱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기대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애물단지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혈세 날리고, 사업자 못 찾고'…경자구역 수난시대
전국 8곳 중 동해안 경자구역과 충북 경자구역은 후발주자다.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경자구역에 합류했다.

두 곳을 합쳐 17조2천억원(동해안 13조원, 충북 4.2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6조4천억원(동해안 4조8천억원, 충북 1조6천억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경자구역 지정 후 3년 반이 됐지만, 형편이 녹록하지 않다.

동해안 경자구역 4개 지구 가운데 구정지구는 지정 3년 만인 지난 2월 해제됐다.

사업비 1천500억원을 들여 글로벌 정주·교육·문화도시로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개발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영국 사업자가 구정지구 개발에 관심을 두는 듯 했지만 결국 투자를 포기했다.

북평지구도 개발 면적이 4.61㎢에서 2.14㎢로 축소됐다.

물류·비즈니스 용지와 유통시설 용지, 외국 기업 전용 임대용지 등에 대한 투자 유치에 실패한 탓이다.

충북 경자구역의 3개 지구 중 1곳인 청주 에어로폴리스 지구 개발계획도 백지화 위기에 처했다.

이곳에 항공정비(MRO)단지를 조성하겠다던 아시아나항공이 지난달 26일 사업 포기 의향을 밝히면서다.

충북을 먹여 살릴 '백년대계'로 불리던 청주 에어로폴리스 지구가 혈세만 먹어치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부지를 매입하는데 든 122억원을 포함, 2014년부터 올해까지 쓴 혈세가 228억원에 달한다.

충북도는 아시아나항공이 손을 뗀 후 이곳을 항공 관련 복합산업단지로 특화하겠다는 새로운 구상을 내놨지만 MRO단지 조성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관련 기업들을 유인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오히려 전상헌 충북 경자구역청장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지는 등 경자구역 조성 사업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추진동력까지 잃고 있다.

인천 경자구역의 영종도 내 6개 사업지구 중 용유 블루라군과 무의 힐링리조크 단위지구도 지난달 5일 퇴출당했다.

용유 블루라군에는 워터파크와 호텔, 무의 힐링리조트에는 콘도와 스파가 들어설 계획이었다.

우선협상대상자까지 선정됐으나 정작 해당 업체가 실시계획 승인을 신청하지 않으면서 두 단위지구는 자동 해제됐다.

◇ 외국기업 10% 불과…국내기업으로 채워진 '산업단지'
전국 8곳의 경자구역에 입주한 기업은 작년 12월 말 기준, 2천189개사이다.

이 중 국내기업이 89.2%(1천952개)이고 외국인 투자기업은 10.8%(237개)에 불과하다.

유치 기업만 놓고 보면 부산진해가 883개(국내 776개, 국제 107개)로 가장 많고 인천 803개(" 713개, " 90개), 광양만 263개(" 237개, " 26개), 대구경북 173개(" 163개, " 10개)이다.

나머지는 유치 기업이 100곳도 안 된다.

충북 41개(" 40개, " 1개), 동해안 22개(" 21개, " 1개), 새만금군산 4개(" 2개, " 2개)이다.

황해 경자구역은 유치 기업이 전혀 없다.

올해 1∼8월의 기업 유치 실적은 집계되지 않았지만 외국기업 유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충북 경자구역청은 작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에어로폴리스 지구에 입주할 8개 업체와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모두 국내 기업이다.

외국 기업을 끌어들이는 것이 궁극의 목표지만 여의치 않다 보니 국내 기업으로 채워넣고 있다.

국내기업 유치도 쉽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이러다 보니 외국기업에 준하는 인센티브를 국내 기업에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국 기업은 법인세 감면, 50년간 국·공유지 임대, 무급 휴일과 파견근로 등 노동규제 특례 등의 혜택을 받지만 국내 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외국기업에 준하는 인센티브를 국내기업에 제공해야 한다는 건의가 산업부에 이어지고 있지만 다른 산단 등에 입주한 국내 기업과 비교할 때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고 법률도 개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간단한 사안은 아니다.

외자 유치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세웠지만 경자구역이 예상보다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걸 산업통상자원부도 인정한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19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경제자유구역 민관 합동 간담회에서 "경자구역이 국가 경제에 일조했지만 성과가 원래 기대했던 것에는 못 미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자구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56억 달러로 같은 기간 국내 전체 FDI의 5%에 그쳤다.

경자구역 내 산업용지를 과다하게 공급한 탓에 대다수 부지가 미개발 상태로 방치됐다.

정부는 2022년까지 경자구역 개발을 마무리할 계획이지만 경기 불황과 국내외 기업의 무관심 탓에 전국 경자구역청의 개발률은 지난 6월 기준, 66.4%에 그쳤다.

산업부는 경자구역이 국가 경제성장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처지다.

전국의 8개 경자구역이 각 지역에 맞는 차별화·특성화된 밑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한 개발 사업자들의 입맛을 잡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