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주요국 통화 대비 빠른 속도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6월 30일부터 지난 9일까지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는 4.13% 상승했다.

원화 절상 속도는 다른 통화와 견줬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엔화, 유로, 영국 파운드, 캐나다 달러 등 주요 10개국 통화 중 원화 다음으로 미국 달러화 대비 절상 속도가 가파른 호주 달러(2.93%)의 절상률도 3%가 채 되지 않았다.

일본 엔화는 0.93% 절상됐고 인도 루피 0.95%, 싱가포르 달러 0.22%, 인도네시아 루피아 0.22%, 말레이시아 링깃 0.15% 절상됐다.

같은 기간 유로화는 0.06% 절하했고 영국 파운드(-3.32%)와 캐나다 달러(-1.33%), 스위스 프랑(-0.17%) 등은 절하됐다.

이날까지 포함하면 원화 절상 폭은 더욱 확대된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오전 달러당 1,099.3원을 기록, 지난해 6월 22일 이후 13개월 여 만에 처음으로 장중 달러당 1,100원 선 밑으로 떨어졌다.

이후에도 더 내려가 원/달러 환율 종가는 달러당 1,095.4원까지 하락했다.

지난해 5월 22일 달러당 1,090.1원을 나타낸 이후 14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브렉시트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하면서 6월 말만 해도 원/달러 환율이 1,180원 선을 웃돈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원화 절상 속도가 가파른 것은 대내외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경기 회복세가 더딘 것으로 확인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 시기를 9월 이후로 늦출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위험 투자 심리가 강화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2%로 시장 예상치(2.6%)를 밑돌았고 2분기 비농업부문 생산성 역시 0.5% 하락해 시장전망치(0.3% 증가)에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국가 신용등급 상향 조정 등 국내 요인도 가세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8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역대 최고인 'AA'로 상향 조정하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7월 1일 이후 현재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4조9천679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책당국도 원화 절상을 주시하고 있다.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은 이달 초 "최근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원화 절상 속도가 특히 빨라 우려된다"며 "쏠림현상이 발생하면 시장 안정조치를 하겠다"고 구두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가파른 원화 절상은 안 그래도 부진한 수출을 더욱 깊은 늪에 빠뜨리고 저물가를 심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한국 수출은 7월까지 역대 최장 기간인 19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다.

정부는 8월 들면 수출이 반등할 수 있으리라고 보고 있지만 원화 절상 속도가 가팔라 이마저 장담할 수 없게 됐는 상황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7%로 10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원화 강세로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하고 수익성이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세종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porqu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