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의학이 침체기를 맞고 있는 사이 중국은 중의약 세계화를 국가 과제로 정하고 천연물의약품 시장에서 주도권을 키우고 있다. 천연물의약품은 바이오 신약 개발의 원천으로 주목받고 있어 미래 바이오산업의 주도권을 중국에 뺏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한의학시장 침체가 한의사들만의 위기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성상현 서울대 약대 교수가 발표한 천연물의약품 연구동향에 따르면 세계 천연물의약품 시장은 23조원 규모다. 매년 30% 이상 성장세를 유지하는 이 시장의 90%(20조원)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약재자원 보호를 위해 각종 약용 작물 조사를 하고 이를 자원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다. 원료 품질을 높이기 위한 연구도 활발하다. 반면 국내 약용작물 시장에서는 외국산 점유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국내 약용작물 재배면적은 매년 4.62%씩 줄고 있다. 수입액은 매년 17.4%씩 증가하고 있다. 국내 한약제제 시장규모는 전통의료인 제도가 없는 일본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전통약제산업 규모는 2800억원으로 일본 1조5000억원, 대만 3000억원보다 작다.

한국 정부의 전통의약 지원 예산은 중국에 비해 턱없이 적다. 중국 위생부는 1조3634억원을 배정하고 있지만 한국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실 예산은 220억원(2014년 기준)에 불과하다.

1955년 세워진 중국의 중의과학원에 근무하는 인력만 4705명이다. 한국 한의학연구원 인력 규모인 143명의 32배를 넘는다. 중국 국립 중의병원은 3590개에 이른다. 국내는 국립의료원과 부산대 한방병원 두 곳에만 한의진료과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국립암센터 등에 한의과를 개설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의사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의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 연구 결과는 전통의학이 의약품 물질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중국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 임상시험을 신청해 진행 중인 중약제제만 9개에 이른다. 협심증, B형간염, 고지혈증, 폐암 등 질환군도 다양하다. 한국도 이 같은 취지로 천연물신약 제도를 마련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한의사에겐 천연물신약 처방권도 주지 않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